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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디지털 시대의 지혜(콜린 맥그래인) - 발췌
작성자 : 김정하 조회 : 224           2018-09-15 20:59:23

디지털 시대의 지혜

- 콜린 맥그래인

 

나는 현대의 기기들을 사용하는 것이, 베네딕도 수도자로서 우리 생활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최소한 세 가지 영역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하느님 현존에 마음 모으기, 다른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환대하기 그리고 공동체이다. 이 글에서 나는 먼저 그런 영향에 대해 본 후, 하느님께 마음을 모으고 다른 이들을 그리스도처럼 맞이하고 공동체를 사는 것이, 우리 자신뿐 아니라 우리 문화가 이런 기기들을 어떻게 더 균형 있게 사용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고찰해보려고 한다.

 

마음 모으기

베네딕도 규칙서(RB)에서 겸손의 첫째 단계는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을 눈앞에 두어 잠시도 잊지 않으며”(RB 7:10)라고 하면서 집중하여 마음을 모으는 일이 수도승이 지속적으로 키워야 할 매우 중요한 자세임을 강조했다. 마음을 모으는 것과 반대라고 할 수 있는 망각은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의식하지 못하거나 무감각한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다.

망각은 전염병처럼 우리가 피해야 하는 것이다! 가장 최근에 자신이 인터넷에 접속했을 때를 떠올려보자. 분명히 뭔가를 검색하기 위해 클릭해서 들어갔지만 몇 분만 지나면 관련 주제에 링크된 수많은 글들을 줄줄이 찾아 들어가 보고 있을 것이 거의 분명하다. 그러다 보면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주제들을 검색하고 있게 된다. 니콜라스 카는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썼다.

 

“‘구글의 이윤은 사람들이 정보를 흡입하는 속도와 직결된다. 우리가 인터넷 바다 위에서 더 빨리 서핑하면 할수록 - 더 자주 클릭하고 더 많이 들어가 볼수록 - ‘구글은 우리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수집하면서 광고쓰레기를 우리에게 먹일 기회를 더 많이 갖게 된다. 인터넷에서 클릭할 때마다 우리 집중력과 주의력은 파괴된다. ‘구글이 벌어들이는 경제적 이익은 우리가 얼마나 자주 클릭하느냐에 달려 있다. 구글은, 말 그대로, 완전히 우리 혼을 빼놓는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저 우연히 망각과 산만함의 파도 속으로 떠밀리는 것이 아니다. 구글이 그렇게 조작한다!

하지만 베네딕도는 우리가 이렇게 혼을 빼놓는 바다에서 무기력하게 떠밀려 다닐 필요가 없다고 말해준다. 베네딕도가 권고하듯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을 늘 눈앞에둠으로써 우리를 산만하게 만드는 파도를 거슬러서 열심히 노를 젓는 일이다.

그 첫째 단계는 자신이 파도에 떠밀려 다니고 있다는 사실과, 어떤 식으로 휩쓸리게 되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이 될 것이다. 과연 나는 인터넷에 들어가 꼭 필요한 것만 찾는가, 아니면 쉽게 옆길로 새는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찾아다니지 않는가? 산만해지고 싶거나 산만해질 필요가 있어서 계속해서 클릭하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는 이 문제에 있어서 자신과 하느님 그리고 영적 지도자나 친구에게 정직해질 필요가 있다.

그 다음 머리말 4절에 나오는 베네딕도 성인의 충고를 따를 수 있겠다. “우선 무슨 선행을 시작하든지 주님으로 인해 마치도록 간절한 기도로써 청할 것이니.” 우리가 인터넷에 접속하려고 할 때 기도로 시작한다면, 그것은 우리를 은총에 다가서게 할 것이고, 하느님을 찾는 우리 갈망을 좀 더 의식적인 것이 되게 할 것이다.

다음으로 제안하고 싶은 것은 아달베르 드 보궤 신부님이, 1993년에 출간된 자서전에서 나눈 방법이다. 그가 실천하는 중요한 수행의 하나는, 15분마다 하던 일을 멈추고 그날 아침의 거룩한 독서중에 묵상한 짧은 시편 구절을 낭송하면서 다시 하느님께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 역시 이런 식으로 현대 과학기술을 잘 사용하여 도움을 받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사실 나는 앱을 이용해서 15분마다 차임벨을 울리게 해놓고, 벨 소리가 날 때마다 예수기도를 한다. 하루의 어떤 시간이든 벨이 울리기만 하면 묵상하던 성경 구절이나 규칙적으로 하고 있는 짧은 기도로 돌아가는 것은 순종의 노고로 하느님께 돌아가는확실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은 우리 생활에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우리는 끊임없이접속한다. 조사의 응답자 60%는 휴대폰을 보지 않고 한 시간을 넘기기 어렵다고 했다. 이 접속은 결코 잠들지 않는다. 응답자 54%는 잠자리에 들어가서도 휴대폰을 확인한다고 답했다. 잠들기 전에 확인하고 깨어나서 다시 확인하고, 심지어는 한밤중에도 확인한다. 어디에서건 통화가 가능해야 한다. 응답자의 40%는 화장실 안에서도 전화를 사용한다고 했고, 73%는 전화기를 잃어버린다면 공황 상태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

 

늘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하느님의 존재를 잊지 않으면서 동시에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에 계속 연결되어 있을 수는 없다.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스마트폰보다 하느님께 훨씬 더 가치를 둔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행동은 우리의 말을 종종 배신한다. 우리는 첫 번째 종소리를 듣고 성무일도를 하러 가기 위해 하던 일을 멈추는 것보다, 스마트폰에 답하려고 훨씬 더 재빠르게 하던 일을 그만둔다. 대개 벨소리가 안 나도록 하지만 미사와 성무일도 때 휴대폰을 가지고 들어가기도 하고, 성당에서 나오기도 전에 전화가 왔는지 확인하려고 휴대폰을 먼저 꺼내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중대한 전화를 놓치지 않으려면 성당에서도 휴대폰을 진동 상태로 켜두어야 한다고, 급히 연락이 올지 모르니 거룩한 독서나 개인기도 중에도 휴대폰을 들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하루를 보내면서 짧은 기도를 하거나 거룩한 독서의 되새김 단어를 마음에 떠올리는 것보다 훨씬 더 자주 휴대폰을 확인하곤 한다.

우리는 풀기 어려운 문제 앞에 있다. 하느님께 온전히 집중하고 싶은 한편 휴대폰에 연결된 상태로 있고 싶기도 하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이 우리 문화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 분야의 전문가인 스탠포드 연구원 클리포드 나스는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할수록, 우리의 기능 모두가 더 나빠진다고 지적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휴대폰을 꺼서 안전한 장소에 두고, 온전히 하느님 앞에만 있을 수 있는 거룩한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전례, 미사, ‘거룩한 독서’, 밤 침묵 시간 등이 여기 포함될 것이다.

 

다른 이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환대하기

베네딕도는 매일 마주치는 살아 있는 살과 피 안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정면으로 마주하기를 기대하신다. 항상 아프다고 불평을 늘어놓는 형제 안에서나 언제나 우리를 미소 짓게 하는 형제 안에서나, 지치지 않고 성가시게 하는 자매에게서나 참을성이 많은 자매에게서나, 기쁘게 환대활 수 있는 손님들뿐 아니라 가장 곤란한 시간에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손님들에게서도, 서로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배우자뿐 아니라 모든 것을 전적으로 다르게 보는 배우자 안에서도, 사랑이 넘치는 자녀들뿐 아니라 자신에게만 주의를 기울여주기를 요구하는 자녀들에게서도, 한 번도 일에 그르침이 없는 동료들뿐 아니라 언제나 일을 더 어렵게 만드는 동료들 안에서도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나기를 기대하신다.

이런 것들이 더 이상 당연시되지 않는 세상이기에, 나는 베네딕도의 이 절대적인 권고를 더 강조하고 싶다. 클리포드 나스는 어린이와 10대들이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얼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되었고 기본적인 정서적 기술도 배우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8-12세 소녀들의 정서적 불건강을 드러내는 가장 분명한 표시는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과 지나친 미디어 사용이라고 한다. 반대로 정서적 건강의 표시는 다른 이와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다.

적어도 어떤 경우에는 이메일과 문자메세지를 주고받는 것이, 우리가 함께 살고 함께 일하는 이들과 소통하는 주된 수단이 되었다. 메일이나 문자를 선호하게 하는, 그럴듯해 보이는 이유들이 있다. 예컨대 더 효율적이고, 즉각 답을 받을 수 있고, 상대방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더 단순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는 점들이다. 그러나 어려운 소임에 관해 아빠스나 원장 수녀와 마주 앉아 마음을 터놓고 의논하는 것과 그 문제에 관해 메일이나 문자를 주고받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당가(當家, 수도원 공급부)에 무엇인가를 청했다가 거절당할 때, 친절한 눈빛과 부드러운 음성으로 하는 말을 직접 듣는 것과 죄송하지만 드릴 것이 없습니다.”라는 메일을 받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공동체 형제자매와 마주 앉아서 대화로 갈등을 풀어가는 것은 문자나 이메일로 불평을 주고 받는 것과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대하는 것은 얼굴을 마주보는 대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공동체, 우정, 결혼생활의 결속을 튼튼하게 하는 것 또한 얼굴을 마주하는 직접적인 대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페이스북같은 소셜미디어가 다른 이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환대하는 데 어떤 특별한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다. ‘페이스북은 내가 마음 내키는 대로 관계 속으로 들어가고 나오고 할 수 있다. ‘페이스북에서 우리는 어떤 사람을 친구에서 제외시킬 수도 있고 그 사람이 올린 글을 안 보이게 할 수도 있다. 수도생활이나 결혼생활에서는 그런 선택을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나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페이스북이나 블로그 활동을 하는 것이 더 재미있을 수 있고, 그건 놀랄 일이 아니다.

우리 자신에게 정직하게 질문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온라인에 접속하여 쓰는 엄청난 시간이 공동체 형제자매, 배우자와 자녀, 친구들과의 진짜 삶을 살아가는 데 쓰는 시간과 서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지 말이다. 우리는 우리 앞에 살아 있는 형제자매, 배우자와 자녀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맞이하도록 부르심 받았다.

 

수도 공동체

페이스북’, ‘트위터’, 블로그 같은 소셜미디어는 우리가 베네딕도 회원으로 공동체를 규정하는 데 어떤 영향을 주는가?

베네딕도에게 공동체는 구체적인 장소인 수도원 안에서 규칙과 아빠스의 지도를 받으면서 살아있는 내 형제자매와 함께 사는 것이다. 삶을 인터넷 공간에서 나누며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과 달리, 베네딕도 공동체들은 즉흥적이고 일시적인 공동체가 아니다. 수도원은 견습기간을 위해서도 신중한 식별과 시험 없이는 지원자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지원자는 정해진 시간 동안 공동체에서 지내며 자신들의 성소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완전한 가족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참으로 하느님을 찾는지, 하느님의 일과, 순명하고 고난을 지는 데 진지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지원자는 베네딕도 규칙을 지키며 살 것을 받아들이고, 자기 소유물을 포기하고 심지어 자신의 육신조차도 자기에게 더 이상 아무런 권한이 없음을 알아야 하고, 정주와 수도승답게 살 것과 순명을 영원히 지킬 것을 서약해야 한다. 베네딕도 공동체는 시간전례와 독서와 노동으로 구획이 되는 매일의 공동질서를 따른다. 회원들은 모든 것을 공유하고, 함께 기도하고, 일하고, 식사하면서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과 순명, 침묵과 겸손, 좋은 열정을 키우며 성장하기 위해 노력한다.

 

제시 라이스는 젊은 세대들은 대부분 강력한 온라인 기기로 연결되는 관계를 경험하고 있다. 그들 식의 공동체는 쉽게 그리고 보통 온라인에서 이루어 진다.”고 설명한다. 공동체가 이젠 쉽게 그리고 보통 온라인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공동체를 어떻게 정의하게 하는가?

 

라이스는 주장한다. “공동체에 대한 더 포괄적인 정의가 필요하다. 진짜와 온라인 관계들 사이에 전통적인 구별들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반면 셰리 터클은 이렇게 말한다. “공동체에 대한 정의는 더 포괄적이 아니라 더 제한적이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페이스북이나 가상현실은 공동체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거의 이단인 듯 비난받는 지점에 와 있다. 그러나 공동체는 실제로 가까이 있고 관심을 공유하며 실제의 결실들을 같이 나누고 공동으로 책임을 지면서 형성되는 것이다.”

 

안락한 잠자리에서 한 손에 커피를 든 채 다른 손의 스마트폰에서 흘러 나오는 시편 찬가로 아침기도를 하는 식의, 가상의 수도생활이 멋지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규칙서는 베네딕도 공동체가 단지 정신을 공유하는 정도로 격하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공동체는 여전히 신체적 근접성, 평생을 거는 약속, 주인의식과 공동생활을 요구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공동체는 살과 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일생동안 함께 기도하고, 식사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작업하고, 회의하고, 식별하는 시간을 통해 마음 모으기와 순명, 겸손과 좋은 열정, 용서하는 덕행을 배운다.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전례 도중 계속 기침하거나 수선스럽게 움직이는 자매를 참아주고, 다른 형제가 식탁에 흘린 것을 닦아주고, 관심을 필요로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하던 일을 멈추고, 우리 약점에 대해 용서를 청하고, 아픈 형제자매들을 방문하고 돌보며, 나와 관점이 아주 다른 사람과 공통분모를 찾으려고 애쓰는 평생의 삶을 통해서만 변화될 수 있다.

가상의 것들에 환호하는 오늘날의 문화 속에서, 우리가 지금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이면서 반문화적인 증거들 중 하나는 살아 있는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께 평생을 건 약속을 살아가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도 그와 같은 삶을 살도록 용기를 주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점에서 같은 삶의 규칙을 나누는 이들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에서 생활하며 새로운 수도승 생활을 시작하는 이들과 서로 도울 수 있다.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시대 가상문화의 한가운데서, 함께 기도하고 가난한 이들과 가진 것을 나누며 지구를 돌보고 환대와 비폭력을 실천하는 작은 공동체에서 살 것을 약속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 <녹색평론>(20169-10. 150)에 실린 디지털 시대의 지혜’(콜린 맥그래인)의 내용을 발췌해보았습니다. 성 스콜라스티카 수도원(미네소타 덜루스)에서 열린 미국 베네딕도회 아카데미’(201282~5)에서 한 강연을 정리한 글입니다.

스마트폰 등 첨단 기기의 사용은 우리 공동체의 삶에서도 일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 글은 우리의 무분별한 첨단 기기 사용에 대하여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을 성찰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주정연
문득 되돌아보게 되는 글, 고맙습니다.하루 하루 생각없이 살아가는 세월속에서! 09-20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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