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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겨울날 식사를 마치고 식당에서 나와 대철이는 닭장으로 닭 보러 가자며 홀로 오르막길을 올라간다. 이제 제 발로 가고 싶은 곳 맘대로 갈 수 있다는 듯이 같이 안가주는 아빠를 뒤로하고 홀로 올라간다. '그래, 무릇 산에 사는 남자아이는 제 오르막길을 홀로 올라야 하지...' 생각에 잠겨 있는 내 옆으로 아이가 굴러 내려 온다. 그저 여느 아이처럼 걷다가 잘못 딛어 넘어졌을 뿐인데 닭장 근처도 가보지 못하고 아이는 경사진 길을 그 무거운 머리를 축으로 하여 돌돌 굴러 내려온다. 다 내려오고 나서 자갈밭에 얼굴을 파묻고 참 서럽게도 울어댄다. 난 우는 아이들 들처 안고 집으로 내려왔다. 닭장엔 나중에 너 혼자 꼭 다시 올라가라 하며... (겨울이라 어차피 가봤자 뜯어 줄 풀이 없단다) 그랬다. 지난 가을에도 집앞 수돗가 앞에서 잠깐 한눈 판 사이 아이는 낙엽을 껴안고 굴러 내려가고 있었다. 그 뿐인가. 걸음마를 하기 전에는 세워둔 유모차가 비탈길로 미끄러져 내려가 한참 아래에서 전복되어 있었다 한다. 일과를 마치고 아이를 안았을때 아이의 멍든 얼굴을 마주해야 했다. 산에서 태어나 산에서 걸음을 뗀 아이의 운명이란건가. 남자아이들은 원래 이렇겠지만... 신기하고 다행인건 그렇게 넘어지고 구르면서도 아이는 참 멀쩡했다. 혼자 생각 하길 이 아이의 수호천사께선 몸살이라도 나시겠구나 싶었다.
이 아이는 몇년 후면 뽕나무 아래서 한참을 오디 주워 먹으며 앉아 있을것이고, 볼이 빨개져라 콧물이 마를새 없이 눈밭에서 썰매를 탈것이며 아랫마을로 물놀이 가면 한참을 올라올 생각을 안 하다가 운좋게 만난 택배차라도 얻어타고 올것이다. 제 누나가 그랬던 것처럼 집을 나서면 마을 어디선가 놀다가 밥먹을때나 만날것이고 지금은 지푸라기 한올 꼭 쥐고 마주 서 있기만 할 뿐인 소하고는 생각날때마다 달려가 먹을것 던져주며 말건네주는 사이가 될것이다. 여름 연못가에선 포개져 있는 개구리들을 유심히 바라볼 것이고 마당에선 늘 언덕배기로 떨어진 공 주으러 뛰어 다닐 것이다. 별들이 많이 떠 있는 밤하늘을 당연한 밤하늘로 알고 자랄 것이며 도시의 밤하늘을 이상하게 여길것이다. 돌길, 흙길에서 넘어지고 구르면서 아이의 몸은 단단해질 것이며 언젠가는 더 높은 곳 더 먼 곳 가보지 않은 곳 길이 없는 그 곳까지 가보자고 할 것이다. 저 숲 속 어딘가에 꿩이며 토끼며 고라니며 멧돼지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항상 생각하며 살 것이다. 베어온 나무의 나이테를 세며 나무의 세월을 가늠할 것이고 이 아이로 인해 어떤 돌맹이들은 허공을 날아 삶의 터전을 바꿀것이다. 온 자연의 동식물들을 그림책으로만 보지 않고 직접 보며 그들과 함께 자라 날 것이다.
그런것에 앞서 아이는 단 밥한숟갈이라도 먹기 위해 오르막길을 올라야 한다. 하루 세번은 꼭 밥먹기 위해 오르고 내려와야 한다. 이제껏 아이를 감사히 지켜주시던 수호천사도 하루 세번은 오르고 내려와야 한다. 그것이 산에 사는 아이의 숙명이다. 산에 사는 아이의 수호천사의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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