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통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견디는 것이다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께서 어느 잡지기자와 인터뷰 중에 하신 말씀입니다. 박완서 선생님은 1988년에 남편을 병으로 잃고 넉달 뒤에는 스물여섯 살 사랑하는 아들을 사고로 또 잃었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우셨겠습니까. 아무도 선생님의 그 비통함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산문집 <한 말씀만 하소서>에서 그러한 고통을 견디는 과정 속에서 신을 원망하고 또 신을 이해하는 심경을 적나라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워 밥을 먹을 수가 없었고 맥주만 조금 먹으면서 얼마간을 보냈다는 말씀도 하고 계십니다.
선생님을 인터뷰한 잡지사 기자는 "선생님, 그러한 고통을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하고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그것은 극복하는 게 아니라 그냥 견디는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셨습니다. 고통에 대해 어떠한 자세를 지녀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이 말씀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떠한 고통이든 고통은 극복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저는 그때 비로소 고통은 견디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고통을 극복하려는 것은 고통에 대한 저항의 자세입니다. 그런 자세를 지니면 지닐수록 고통은 더욱 고통스러워집니다. 그러나 고통에 대한 견딤의 자세는 고통을 받아들이는 겸허한 자세입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받아들이지 않고는 고통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우리도 고통이 있을 때마다 선생님의 이 말씀을 생각합시다. '고통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고 견디는 것이다. 극복의 힘보다 견딤의 힘이 더 중요하다. 견딤의 자세가 바로 인생의 자세다'라고 생각하면서 어떠한 고통에 대해서도 늘 굳건한 견딤의 자세를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신은 가끔 인간에게 빵 대신 돌멩이를 던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돌을 원망하며 걷어차버리다가 발가락이 부러지고, 어떤 사람은 그 돌을 주춧돌 삼아 집을 짓는다고 합니다. 신이 던진 돌멩이에 맞은 인간은 참으로 아프고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 고통을 견디고 인생의 아름다운 집을 지은 사람을 닮고 싶습니다.
뱀장어처럼 가늘고 긴 물고기인데, 논이나 하천에 사는데 미꾸라지와 뱀장어의 트기라고 하는 드렁허리라는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중국 명나라 때 철학자 왕간의 이야기라고 합니다.
"도를 얻으려는 사람이 어느 날 우연히 시장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는 생선가게 앞을 지나가다가 드렁허리가 잔뜩 들어있는 큰 대야를 보았다. 대야엔 물이 바짝 말라 있는데다 서로 얽히고 눌려서 드렁허리들이 마치 죽은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미꾸라지 한 마리가 드렁허리들 속에서 나와 아래와 위로, 좌에서 우로, 앞으로 뒤로 계속 움직였다. 쉬지 않고 생생하게 움직이는 것이 마치 신묘한 용과 같았다. 그러자 가만히 죽은 것 같았던 드렁허리들도 따라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꾸라지한테 생기를 얻고 같이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죽은 것 같던 드렁허리들이 다시생기를 얻어 몸을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미꾸라지 때문입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이리저리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기운을 주고 소통을 시켜주었기 때문에 삶의 의지를 회복한 것입니다.
그런데 미꾸라지는 갑자기 왜 그렇게 생동감 있게 움직인 것일까요. 죽어가는 드렁허리를 위해서 일까요. 아닙니다. 미꾸라지는 드렁허리를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자신의 본성에 따라 움직였을 뿐입니다. 미꾸라지가 자기 본연을 다한 것이 결과적으로 드렁허리를 살린 것입니다. 드렁허리를 살리겠다는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닙니다. 그런 의도가 있었다면 살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고통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을 고통스럽게 하려는 부정적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라, 미꾸라지처럼 자기의 본성대로 움직였을 뿐입니다. 따라서 미꾸라지를 통해 드렁허리가 살아나듯 고통을 통해 인생도 더 단단하고 아름답게 살아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드렁허리의 얘기를 들으면서, 인생에 왜 고통이 존재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결국 저를 살리기 위해서 고통은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고통을 거부하고 극복의 대상으로 삼을 게 아니라 받아들이고 견뎌나가야 할 삶의 양식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불가에서는 준 자와 받은 자가 없다고 합니다. 고통이 제게 고통을 준것도 아니고, 제가 고통에게 고통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저는 오늘 누군가한테 고통을 받는다고 생각하며 오늘을 살아갑니다. 미꾸라지 처럼 제 본연의 삶을 살면 자연스럽게 드렁허리가 살아나듯이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는데도 그 점을 늘 잊고 삽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