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6월 19일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D+503)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대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와 구원의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성목요일에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것과 미사 때마다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어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의 현존을 기념하고 묵상합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써 몸소 제정하신 신약 곧 영원한 계약의 제사요 잔치인 성찬례에 정성껏 참여합시다. 당신의 살과 피를 몽땅 우리에게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성체와 성혈을 기리며 이 미사에 참여합시다.
찬미예수님!
옛 교리문답에는 “성체성사는 무엇이뇨?” “성체성사는 칠성사 중에 제일 큰 성사요, 천주교회의 제사요, 또한 우리 영혼의 양식이니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에서는 이렇게 나옵니다. “우리 구세주께서 최후 만찬에서 당신 몸과 피로써 성찬의 희생 제사를 제정하셨다. 이 제사는 자비의 성사이고 일치의 표징이며 사랑의 끈이다. 이 제사는 그리스도를 받아 모시어, 마음을 은총으로 가득히 채우고 미래 영광의 보증을 받는 파스카 잔치이다.”
주님께서 성체성사의 재료로 사용하신 빵과 포도주는 일상적인 것이지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표징입니다. 빵과 포도주는 창조주께서 마련해 주신 땅과 포도나무의 결실이며, 우리가 일구고 가꾸어 얻은 결실입니다. 그러므로 성체성사에서 빵과 포도주가 주님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것은 우리 인간의 모든 일과 노고가 천상의 실재로 변화함을 의미합니다. 구약시대에 빵과 포도주는 하느님께 바치는 감사 예물이었습니다. 오늘 1독서에 나온, “빵과 포도주를 감사 예물로 가지고 나온” 왕이며 사제인 멜키세덱의 행위를 교회는 자신이 드리는 봉헌의 예표로 봅니다(히브리7장).
우리 산위의 마을 가족들은 매일 아침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다음과 같이 기도를 바칩니다.
"자비로우신 아버지, 오늘도 저희에게 일할 수 있는 건강과 일거리를 주셨으니 감사하나이다. 오늘 하루 저희들의 기도와 노동의 순간마다 서로에게 평화와 기쁨의 선물이 되게 하시며, 수고와 정성마다 풍성한 결실로 맺어 주옵소서. 성체성사의 제물로 당신 앞에 바치겠나이다."
떼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님의 '세계 위에서 드리는 미사'라는 소책자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저는 온 땅덩이를 제단으로 삼고, 그 위에 세상의 온갖 노동과 수고를 당신께 봉헌하겠습니다. ----- 오 하느님, 저는 새로운 노력이 이루어 낼 소출들을 저의 이 성반에 담겠습니다. 또 오늘 하루 이 땅이 산출해 낼 열매들에서 짜낼 액즙을 이 성작에 담겠습니다.”
오늘 우리도 소백산 자락 산위의 마을 전체를 제단으로 삼아 우리의 두려운 노동과 수고 피와 땀과 눈물을 제물로 바쳐 이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빵과 포도주는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의 파스카 음식입니다. 그들은 누룩 없는 빵으로 이집트 종살이를 기억하였으며, 과월절 식사 후에 나누는 포도주로 종말에 이루어질 잔치의 기쁨을 미리 누리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구약의 파스카 축제 음식으로 새 계약의 잔치를 마련하였습니다.
성찬전례는 빵과 포도주를 예물로 봉헌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창조주께서 주신 선물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봉헌하는 것입니다. “온 누리의 주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주님의 너그러우신 은혜로 저희가 땅을 일구어 얻은 이 빵을(포도를 가꾸어 얻은 이 술을) 주님께 바치오니 생명의 양식이(구원의 음료가) 되게 하소서.” 그리스도께서는 이 예물을 마련한 인간의 모든 노고를 당신의 희생 제사 안에서 완전하게 하십니다.
성체성사는 십자가상에서 성부께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현재화하며 그분의 파스카(죽음과 부활)를 기념하는 잔치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성찬례를 통하여, 십자가 위에서 당신 자신을 성부께 단 한 번 영원히 봉헌하신 희생 제사에 교회와 교회의 모든 지체를 참여시키십니다. 그러므로 성체성사는 교회 생활의 핵심이며 정점입니다.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성체성사를 거행하는 사제는 빵과 포도주에 성령의 강복을 청하면서 “이는 내 몸이다. ------- 이는 내 피다.”(마르 14,22.24)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축성하며, 이로써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합니다. 이를 실체변화라 하는데, 살아 계시고 영광 받으신 그리스도께서 친히 참으로, 곧 실체적으로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현존하십니다.
우리는 성체성사로 그리스도와 하나 되고 형제들과도 하나 되어, 삼위일체 하느님의 친교에 참여합니다. 영성체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 우리는 또한 소죄를 용서받고 대죄에서 보호를 받으며,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의 일치도 강화하게 됩니다.
교회는 성체성사로 살아갑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2003년에 회칙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를 반포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 희생 제사를 앞두고 최후의 만찬에서 제정한 성체성사와 교회의 불가분의 관계를 다시 조명하셨습니다.
“교회는 십자가의 영원한 희생 제사에서, 그리고 성찬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결합됨으로써 자신의 사명을 수행할 영적인 힘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성찬례는 모든 복음화의 원천이며 정점입니다.”(회칙 22항)
‘성체성사와 교회의 관계에 관한’ 이 회칙은 가장 핵심적 교리이며 ‘교회 생활의 중심에 서 있는’ 성체성사의 ‘놀라움’을 되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3년째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해 자칫 전례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경향이 생겼다면, 우리는 이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재현하는 성찬례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일깨울 필요가 있습니다.
성체성사에 대한 올바른 참여를 위해서는 희생 제사로서 성체성사의 의미를 바르게 깨달아야 합니다.
“성찬례는 해골산의 희생 제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희생 제사이며 단지 그리스도께서 신자들에게 영적양식으로서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는 것이라는 식의 일반적인 의미만을 지닌 것은 아닙니다.”(회칙13항)
“희생제사의 구원의 힘은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실 때 완전하게 실현됩니다.” (회칙16항)
모든 신자들은 미사에 참례해 영성체를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실제로 우리 안에 받아 모심으로써 많은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만큼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성체성사입니다. 이에 따라 바른 자세와 준비로 성사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주일미사에 참례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주일미사와 성체성사의 중요성에 대해서 소홀해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교황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교회 생활의 원천이자 정점인 성찬례의 본질은 선교하는 공동체의 모습 안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는 기쁨으로 가득하고, 언제나 기뻐할 줄 압니다. 또 작은 승리를 거둘 때마다, 곧 복음화의 활동에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내딛을 때마다 기뻐하며 경축합니다. 기쁨에 찬 복음화는 우리 일상의 요구 안에서 선을 키우며 전례 안에서 아름다움이 됩니다. 전례의 아름다움을 통하여, 교회는 복음화하고 복음화 됩니다. 전례는 또한 복음화 활동을 경축하는 것이며 자신을 내어 주는 새로운 힘의 원천입니다.”(권고24항)
성체성사는 교회 울타리 안에서 폐쇄된 공동체의 모임으로 그치지 않고, 오히려 모든 이들 각자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랑을 드러내는 큰 사랑으로 구현돼야 합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하느님께서 가엾이 여기고 베푸시는 분이시니, 하느님을 믿는 우리 신앙인도 이웃을 가엾이 여기고 그들과 나누라고 촉구합니다. 복음서가 전하는 최후 심판 이야기(마태25,31-46)는 정의와 공평을 위한 하느님의 잣대가 무엇인지 말해 줍니다.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목마른 사람에게 마실 것을 주고, 나그네를 맞아들이고, 헐벗은 사람을 입혀 주는 것이 하느님의 정의와 공평을 실천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은 이웃을 가엾이 여기고 축복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이 생각하는 정의와 공평은 부족합니다. 인간을 극진히 사랑하신 그분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우리 삶 안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