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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26일 연중 제13주일(D+510) 교황 주일
오늘은 연중 제13주일이며 교황 주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어 거룩한 신비를 거행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에 하느님께서 사랑의 힘과 부드러움을 더해 주시어, 그리스도를 충실히 따르며 너그러운 마음으로 형제들을 섬기게 해 주시기를 청합시다.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인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전 세계 교회를 잘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주님의 도움을 간절히 청합시다.
찬미예수님!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신다는 것은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 많은 사람 중에서 나를 선택하셔서 당신의 일꾼으로 삼으십니다. 그러나 그 부르심, 소명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는 결단과 희생과 노력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결단, 자기를 죽여야 하는 희생, 그리고 땀 흘리며 수고하며 걸어가는 기나긴 노력이 필요합니다.
오늘 1독서에서는 예언자 엘리야가 엘리사를 후계자로 부르는 장면이 극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엘리사는 겨릿소를 가지고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그 곁을 지나면서 겉옷을 벗어 엘리사에게 걸쳐 주자 엘리사는 바로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 달려갔습니다.
여기서 겉옷을 벗어 걸쳐 준다는 것은, 엘리야가 가지고 있는 예언자의 직분과 권한과 그 능력을 전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엘리사에게는 크나큰 영광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부모와 작별의 인사가 필요했습니다. 인사 없이 떠날 수는 없으므로 허락을 받아서 떠날 채비를 했습니다. 먼저 소를 잡고 쟁기를 부수어 그것으로 고기를 굽습니다.
소를 잡고 쟁기를 부순 것은 다시는 그 일터로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불러 자초지종을 말하고 작별의 인사를 전하게 되니, 중도에서 고향으로 되돌아간다면 그것은 본인에게 커다란 수치요 죽음이었습니다. 엘리사는 이처럼 철저히 준비하고 스승 엘리야를 따라갑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마음가짐 몇 가지를 제시합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대단히 영광이지만, 그러나 용기 있게 따라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복음에서도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독서와는 대조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을 때 그 사람이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례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하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죽은 자들의 장례는 죽은 자들에게 맡기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죽은 이는 하느님의 나라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아버지이신 하느님과 함께 있는 것이 살아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입니다. “죽은 이들은 죽은 이들에게 맡기고,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리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죽음을 위한 대책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에 대해 깨닫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부모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쟁기를 잡고 뒤를 자꾸 돌아보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 곧 함께 계시는 하느님에 대해 깨달은 사람은 자기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과거의 자기 공적에서 보람을 찾지도 않고, 과거에 받은 상처로 괴로워하거나 사람을 미워하지도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과거에 얽매여 행동하는 것은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느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을 체험한 사람에게는 새로운 내일이 열립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인은 내일을 향해 사랑하고 용서하는 실천을 합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절대적이며 무조건적입니다. 복음에서 첫 번째 사람은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하고 간청했지만,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찌 보면 적극적으로 따르겠다는 것을 거절하십니다. 이처럼 부르심은 인간의 뜻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님 당신의 뜻에 따라 불립니다. 주도권이 우리가 아니라 주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부름을 받은 이의 자세는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불확실하고도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결단과 수락입니다. 장차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며 또 어디로 끌려갈지도 모릅니다. 그 길이 사막일 수도 있고 가시밭이나 자갈밭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부르시니까 무조건 따라가야 합니다. 이것이 첫째가는 우리의 자세요. 응답입니다.
둘째, 주님의 부르심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기를 끊고 죽이는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엘리사가 겨릿소를 잡고 쟁기를 부수었듯이, 그리고 베드로가 배와 그물을 버렸듯이 자기 것을 포기하고 끊어 버리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어디에 자기가 묶여 있거나 매달려 있으면 따라갈 수 없습니다. 가진 것이 많고 무거우면 못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재물이 많아도 안 되고 인정이 많아도 안 됩니다.
셋째,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됩니다. 뒤를 돌아다보면 10년 동안 열심히 걸었던 공로도 다 물거품이 됩니다. 아무리 앞만 보고 오랜 시간을 걸어갔어도 뒤를 돌아다보면 바로 한 발짝 거리에 파계(破戒)가 있습니다. 십 년의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나흘거리를 사십 년 걸려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그 자체로 큰 영광입니다. 하지만 영광의 길은 평탄한 것이 아닙니다. 또 아무나 쉽게 걸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고하고 땀 흘리며 고생하는 사람만이 주님의 뜻에 협력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도구로 올바르게 쓰여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것은 예수님 덕에 재물이나 지위를 얻어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후광으로 삼아 사람들 위에 군림하거나 행세하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인은 머리 둘 곳조차 없었던 예수님을 따라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탐하지 않고, 소박하고 단순하게 또 자유롭게 삽니다. 신앙인에게 중요한 것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은혜로우신 하느님의 일을 자기 주변에 실천하여 사람들이 은혜로우신 하느님 안에서 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 안에 삽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요한 15,9)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자각한 사람이 바로 신앙인입니다. 신앙인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실천하며 그분 자녀로 삽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은 자신의 공로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이신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자기도 실천할 따름입니다. 신앙인은 자기의 과거를 생각하고 통회하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 안에 살아 계셨듯이,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의 새로운 실천들 안에도 그분은 살아 계십니다.
오늘은 교황 주일입니다. 교황님을 위해서 특별히 기도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훌륭하신 교황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우리의 많은 기도와 협력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맡겨주신 소명을 가지고 성실히 봉사함으로써 교회가 진정한 세상의 빛이 되고 구원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존경과 애정으로 교황님을 위해서 축복의 기도를 바쳤으면 합니다. 교황님과 우리가 일치할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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