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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3일 사순 제5주일 (D+426)
찬미예수님! 오늘 복음 간음한 여인 이야기에서 우리는 끌려온 여인의 입장이 되어 보기도 하고, 또 여인을 단죄하는 유다 지도자들이 되어 볼 필요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떠나 있을 때,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거부했을 때 우리는 간음한 여인과 같은 처지에 있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하느님을 떠나서 우상을 숭배하는 죄를 간음죄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 한편 유다 지도자들이 되었을 때에는 우리 마음 안에 불쌍한 영혼에 대한 연민의 마음보다는 모욕과 수치를 주고 단죄하는 마음이 있지 않은지 솔직하게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름 아침 어둠이 가시는 시간에, 욕망의 혼돈에 빠져 있던 여인이, 예수님에 대한 적대감의 혼돈에 빠져 있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 끌려 예수님 앞에 옵니다. 예수님은 당시 큰 무리의 사람들과 함께 계셨는데, 유다 지도자들은 여인을 그 한 가운데에 세웁니다. 그러자 서로 다른 세 그룹 사람들의 눈길이 이 여인에게 쏠립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잔인하고 적대적인 눈길, 군중의 호기심에 찬 눈길, 그리고 예수님의 연민과 자비의 눈길입니다.
돌 같은 마음을 가진 유다 지도자들이 여차하면 여인에게 돌을 던질 태세로 예수님께 묻습니다.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현장에서 붙잡혔다는 것은 적어도 두 사람의 목격자가 있었고, 그 사람들이 법적인 증언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유다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의견을 듣지 않고도 이 사건을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굳이 여인을 데리고 온 것은 순전히 예수님을 잡아들이기 위해서였습니다.
유다 지도자들에게는 부족한 이들을 도와주고, 방황하는 이들을 바른 길로 이끌어주려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 여인의 영혼과 구원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어둠에 갇혀있는 이들이었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 피해가기 어려운 질문을 던집니다. 율법은 간음한 자를 사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니, 예수님이 율법대로 하라고 말씀하신다면 여인은 당연히 죽게 됩니다. 반면 용서해 주라고 하시면 예수님은 율법을 어기게 되는 진퇴양난의 질문인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그들에게 “이 여자를 돌로 치시오.”라고 하신다면 여태껏 사랑, 자비, 용서의 삶을 살라는 가르침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군중은 혼란스러워할 것입니다. 게다가 예수님은 억눌린 자들과 죄인들의 벗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반대로 예수님이 “여자를 돌로 치지 마시오.”라고 하신다면, 유다 지도자들은 돌멩이를 들고 이렇게 외칠 것입니다. “여러분, 이자가 지금 모세의 율법을 따르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하느님과 율법에 대한 충성으로 이자를 돌로 쳐 죽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유다 지도자들의 고약한 질문에 굳이 대답을 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리되면 예수님은 안전할지 모르나 그 여인의 안전은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율법 규정대로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일 테니 말입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이 말씀은 사실 율법을 준수하시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가르침에 따라 간음한 여자는 마땅히 돌로 쳐 죽여도 좋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만 ‘당신들 가운데 죄 없는 자’라는 조건을 붙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풀어보면, “당신들 가운데 몸으로든 마음으로든 성적으로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지시오.”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양심을 건드리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법적 차원에서 접근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여인을 살리시려고 더 높은 차원의 법, 곧 양심의 법을 사용하십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자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씩 떠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쌍한 여인을 이용해서 예수님을 넘어뜨리고자 한 이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그 자리를 떠난 것입니다. 이것이 양심의 위대한 힘입니다. 진리의 말씀 앞에서는 인간의 양심이 반응합니다. 인간이 양심을 거스를 수 없는 것은, 양심이 진리이신 주님을 거스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간음죄를 범한 여인과 일대일로 대하시면서 사랑 받을 수 없는 상태에 떨어진 여인을 지극한 자비로 감싸주시고 용서해 주심으로써 사랑받는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하십니다. 군중 한가운데 세워졌던 여인은 공개적으로 치부가 드러나 모든 이 앞에서 더할 나위 없는 수치를 당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 구절을 주석하면서, 비참과 자비가 만났다고 했습니다. 비참은 여인을, 자비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우리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 모두 비참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의 질곡에서 어느 누가 자신은 한 번도 비참했던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갈 길을 몰라 암흑 속을 헤매며 고통스러워할 때, 나를 희망과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신 분이 과연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나를 구해내신 분은 자비로우신 주님이십니다. 우리 모두는 굽이굽이 펼쳐지는 삶의 여정에서 비참과 자비를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포함하여 너무나 많은 사람이 비참한 처지에서 신음하며 살아갑니다. 오늘날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전쟁의 비극에서 푸틴을 용서할 수 있을까요?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외롭지 않고 고달프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비로우신 예수님은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는 곤경에 처한 우리들에게 빛으로 오시어 어둠에서 구해 내시고 절망에서 희망으로 인도해 내실 것입니다.
지난 3월 25일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께 바치신 봉헌기도문”중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습니다.
“거룩하신 어머니, 죄의 비참함, 우리의 수고와 나약함, 알아듣기 힘든 악행과 전쟁의 부당함 속에서도 하느님께서 저희를 버리지 않으시고 용서하시는 사랑으로 저희를 끊임없이 바라보시며 일으켜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게 해주소서. 당신을 저희에게 주시고 당신의 티 없으신 성심 안에 교회와 인류를 위한 피난처를 마련해 주신 분은 하느님이시옵니다. 당신께서는 거룩한 선의로 저희와 함께 하시고 역사의 굴곡에서도 애틋한 마음으로 저희를 이끌어 주시나이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는 죄인을 구하고자 이 세상에 오신 주님의 모습이 잘 드러납니다. 죄인의 구원을 바라시는 구세주의 간절한 염원과 우리 대신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기꺼이 걸으시겠다는 희생의 태도가 들어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그녀가 짊어져야 할 죗값을 기꺼이 대신 짊어지시겠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말씀이야말로 십자가의 희생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말씀이기 때문에 경이롭고 다른 기적보다도 더 크게 보입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이 그러하셨듯이 상처 입은 이들을 조건 없이 품어주고, 죄 지은 이들을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처럼 정의의 이름으로 단죄하고 교회 밖으로 내쫓으려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간음한 여인의 경우에서 보듯이, 예수님은 우리가 죄와 실패에도 그분 안에서 다시 일어나서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우리를 단죄하지 않으시는데 우리 스스로 자신을 단죄하고 용서하지 못한다면 그러한 태도는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귀의 생각일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용서는 받아들이면서도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한다면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않고, 단죄하며 스스로에게 벌을 줌으로써 자기중심에 사로잡히는 교만 죄를 짓는 것입니다. 자신을 용서한다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자기용서는 자신이 선택한 잘못된 행동보다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반성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제부터 다시 죄짓지 마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거룩함으로의 초대입니다. 여인에게 더 이상 죄를 짓지 말고 새로운 삶을 살라는 초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선물을 주신 다음에는 반드시 거룩한 변화를 향한 초대가 뒤따릅니다. 구원받은 자로서 성화의 삶을 살라는 부르심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죄를 지으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아마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자비로우신 예수님께서는 먼저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신 후 성화의 길로 초대하십니다.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정의는 징벌이 아니라 용서로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율법이 아니라 사랑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간음한 여인 사건이 있고 나서 유다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사람의 기준으로 심판하지만 나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는다.”(요한 8,15) 예수님은 율법을 사람의 기준으로 해석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기준으로 해석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랑의 법이 율법을 완성합니다. 우리는 법을 준수하고 적용함으로써 사회 정의를 구현해야 하지만, 그 완성은 사랑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의 마음 없이 법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사람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 사람이 지은 죄만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자비로우신 예수님께서 사랑의 마음으로 죄인을 대하셨듯이 우리도 같은 마음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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