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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14일 주님 만찬 성목요일 (D+437)
파스카 성삼일은 한 해의 전례주년에서 가장 거룩하고 뜻 깊은 기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에 대한 파스카 신비를 기념하는 삼 일 동안을 말합니다. 파스카는 본래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축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인도로 이루어진 이 사건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구약의 파스카는 신약의 파스카인 부활을 미리 보여 준 사건입니다. 오늘 우리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과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있었기에 새로운 생명으로 건너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작년 사순시기에는 미얀마 국민들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마음이 아프고 답답했습니다. 올해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국민들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자비로우신 주님께서 도움의 손길을 뻗어 주시기를 간절히 청합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국민들에게도 부활의 기쁜 소식이 빨리 전해지기를 마음을 모아 청합니다.
찬미예수님!
오늘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에서 우리는 먼저 예수님께서 사랑의 유산으로 남겨주신 성체성사의 신비와 사랑의 새 계명을 묵상합니다. 그리고 그분 삶 전체와 사랑의 표현인 세족례에 참여하며, 서로 사랑하고 봉사하며 살아가기로 다짐합니다. 또 수난 감실로 옮겨 모신 성체 앞에서 밤새 깨어 조배하며 예수님 홀로 하느님 아버지와 대면한 겟세마니에서의 고독을 묵상합니다.
성목요일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성찬례를 상기합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앞두고 당신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 곧 이별만찬을 하시며 파스카 만찬의 의식을 새롭게 해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쪼개진 빵으로 당신 자신을 내어주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 죽음의 표지로서 쪼개진 빵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십자가 죽음이라는 절정에 이르는 사랑으로 당신 자신을 주십니다. 포도주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만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는 강생하신 그분의 사랑 곧 하느님의 사랑을 마십니다. 우리는 먹고 마심으로써 그리스도와 하나 됩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당신 사랑을 몸으로 보여주길 원하셨기에 거룩한 만찬을 세우십니다. 거룩한 만찬은 사랑의 유산이며,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의 모든 감각으로 날마다 새롭게 체험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요한 복음서에서는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제정하는 이야기는 없는 대신에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발 씻김의 행동은 성체성사 제정에 대한 다른 식의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면서 당신의 피를 가리켜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은 당신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그들의 죄를 씻어주심을 상징합니다. 즉, 성체성사의 다른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세족례를 통해서 당신의 삶 전체를 다시 한 번 요약하시고 당신 활동의 깊은 의향을 표현하십니다. 예수님은 지상에 사시는 동안 종이 되셨습니다. 당신 자신을 인간으로 낮추셨고, 당신 발의 먼지에 이르기까지 낮아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신 목적은 인간을 정화하고 구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본을 따라 제자들이 서로 발을 씻어 줄 것을 당부하십니다. 유다 사회에서 가장 비천한 종이 수행하는 일,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 주는 일을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하셨다면, 제자들도 마땅히 서로의 발을 씻어 주어야 합니다. 곧 서로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섬김은 자신을 낮출 때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실 때 가지셨던 자세는 바닥에 주저앉아 허리를 굽히고 있는 자세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주기 위해서는 먼저 그 사람의 발아래 무릎을 꿇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체면과 위엄을 벗어버리고 겸손하게 자신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봉사는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굳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늘에서 내려다 보시면서는 봉사를 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허리를 굽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은 아래에서 올려다보면서 하는 것임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준 행위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그들의 죄를 씻어 준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서로의 발을 씻어주라는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서로 겸손하게 섬겨야 합니다. 동시에 서로의 허물과 죄를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서로의 발을 씻어주라는 말씀은, 서로 섬기라는 것과 서로의 허물과 죄를 용서해 주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요한13,14)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점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누구의 발을 씻어주라’고 하셨나 입니다. 예수님의 발이 아니라 우리 옆에 있는 형제자매들의 발을 씻어주기를 당부하십니다. 그것도 의무 사항으로 당부하십니다.
사랑의 빚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누가 가장 남을 위해 잘 봉사할 수 있을까요? 주님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러한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누가 가장 남을 잘 용서할 수 있을까요? 주님으로부터 큰 용서를 받았을 뿐 아니라 그러한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은 우리에게 사랑의 빚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먼저 주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있고, 그다음에 우리가 그 사랑을 기억하고 보답으로써 형제자매들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빚을 기억할 때 남을 섬기는 일이 보다 쉬워집니다. 만약에 사랑의 빚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자존심 때문에 제대로 섬기지 못하거나, 이해에 대한 탐욕이 올라와 제대로 섬기지 못할 것입니다. 설령 섬긴다 하더라도 자기 공로를 드러내며 교만에 빠질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돌아온 탕자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거스르고 어둠의 자식이 되어 살아가던 자입니다. 돌아온 탕자가 아버지 집에 돌아온 다음 어떻게 살았을 지를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돌아온 탕자의 자세로 다른 이들의 발을 씻어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엄청난 사랑을 기억하면서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봉사해야 합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봉사나 자기만족을 위한 봉사가 아니라, 사랑의 빚을 갚는 사람의 심정이 되어 순수한 마음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발 씻는 예식은 4세기부터 교회 전례 안에서 행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삶에서 형제자매들을 섬기고 돌보아 주는 일 없이 성목요일 예식에 참석한다면, 세족례는 참으로 공허하고 형식적인 예식에 불과할 것입니다. 예식이 예식답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 예식이 담고 있는 정신을 실제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공허한 예식, 형식적인 예식으로만 끝난다면 참으로 시간낭비일 뿐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 만찬 미사 후에 과월절 유다인 가정의 문답과 만찬식사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수난의 시간을 묵상하는데 도움이 될 영상을 함께 볼 것입니다. 또 과월절 만찬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화를 재현하는 제자문답을 한 후에 성시간을 할 것입니다. 성시간 후에는 밤새 각자 한 시간 동안 조배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깨어있으면서 예수님처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깨달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나와 함께 깨어있어라.” (마태26,38)
이러한 예수님의 간절한 청원도 제자들을 깨어있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잠에 빠져들었기에 예수님은 홀로 아버지를 대면해야 했습니다. 이곳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 비록 우리가 이해하지 못해도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기도를 완성하십니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마태26,39)
오늘밤에 우리도 홀로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려달라고 간절히 청했으면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기도와 일치하는 무언가가 우리에게도 일어날 것입니다. 사람들을 바라보지 않고 하느님의 뜻에 나를 내맡길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내적인 명확성과 확고함을 줄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수난감실 앞에서 성체조배를 하면서 하느님과 마주하며 다음과 같이 물어봅시다.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가? 나는 다른 사람의 기대만을 채우려 하는가? 나에게 하느님의 뜻을 찾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 마음 안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어둠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어떤 것도 우리를 위협할 수 없을 것입니다.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어둠과 죽음의 모든 세력보다 더 강하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겟세마니 동산에서 고독한 싸움을 하신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 봅시다. 이러한 고독을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여쭈어 봅시다.
나의 삶은 하느님의 뜻과 일치합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나의 삶에서 무엇이 변화되어야 합니까?
하느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시고 겟세마니 동산에 있는 당신의 아들 예수님처럼 우리를 굳세게 하는 천사를 보내주시도록 오늘 밤 성체조배를 하며 간절히 청합시다. 또 참혹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위해서 주님께서 개입해 주시기를 간절히 청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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