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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성령 인식의 어려움
작성자 : 공원표야고보 조회 : 57           2018-05-19 17:08:26
성령 인식의 어려움

  부활하신 주님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우리와 함께 우리 마음 속에 그리고 교회 공동체 안에 항상 머물러 계신다. 하지만 그분께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음에도 우리는 그분의 현존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때가 많다. 그리고 신학적으로나 교리적으로 성령에 관한 설명 역시 매우 조심스럽고 애매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그리스도교 역사 안에서 가장 느리고 조심스럽게 발전되어 전수되어 온 가르침이 성령의 현존에 대한 가르침이다.

그만큼 교회의 역사 안에서 초기 그리스도교의 그리스도론 논쟁 이후에 가장 많이 이단이나 오류가 발생해 논란을 일으킨 영역이 대부분 성령론과 관련된 영역이었다. 일반 대중이 종교 역사에서 특히 가톨릭 교회의 어두운 역사에 관해 꼬집어 얘기할 때 많이 언급되는 중세의 종교재판과 관련되는 대부분의 사건들이 바로 이 성령의 현존 혹은 성령 체험과 연관되어 발생한 사건들이다.

쉬운 예로 어떤 이가 하느님을 체험했다고 주장한다면 과연 그 진술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또 그것이 옳은 것인지 그릇된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하느님을 체험했다는 그 주관적인 주장을 과연 교회는 어떤 객관적인 기준으로 옳거나 그르다는 평가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일까? 이처럼 주관적 체험과 객관적 평가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많은 어려움과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이런 어려움은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 최근 심각하게 겪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특히 성령 쇄신 운동이 70년대에 서서히 도입되어 80년대를 거치면서 불같이 퍼져 나가 확산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80년대 말과 90년대 초반에 교회 안에서 사적 계시의 문제가 심각하게 등장하였다.

  성령 쇄신 운동을 통해 많은 이들이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치유의 은총과 내적 쇄신의 은총을 체험하면서 하느님과 교회를 사랑하고 신앙생활에서 많은 성장을 체험하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개인적 영적 체험이 강조되면서 하느님 혹은 성령을 체험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이 생겼다.

  성령쇄신운동을 통해 한편에서는 신앙에 관계된 여러가지가 성직자,  수도자들의 점유 영역에서 탈피해 일반 대중에게 확장되었고, 또 이런 맥락에서 등장한 어려운 문제이다.
  바로 개별적 신앙체험을 어떻게 객관적 지평에서 식별하고 판단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주관적 신앙체험과 교회라는 객관적 지평에서의 식별과 판단이라는 문제에서 견해 차이가 발생하면서 끊임없이 혼란을 겪는다.

  참다운 하느님 체험은 무엇이고 참다운 영적 성장은 어떤 여정인지 점검해 보는 식별의 지혜를 청하고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삶 가운데에서 현존하시는 성령을 왜 우리가 잘 알아보지 못하는지 그 이유들을 찾아보고자 한다.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는 세속화의 문제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급속도로 발전한 과학 기술 문명의 힘에 의존하면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세속화되어 온 사회이다.

  세속화는 종교적 가치 기준이 중심이 되어 사회 제도를 형성하고 유지 시키던 문화에서 점차 종교적 신조나 관습이 더 이상 영향력을 형성하지 못하고 주변으로 밀려나고 비종교적 가치가 중심이 되는 사회로 변화해 가는 과정이다.

  삶의 현장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 현존을 잘 알아보지 못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주요한 요인은 우리 신앙 이해가 이원론으로 치우친 서양의 일부 철학적 풍조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 깊숙한 내면에서나 일상의 삶에서 나누는 다양한 관계 속에서 더불어 함께 하시는 그런 하느님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것과는 상관없이 저 높은 곳에 계시면서 상선벌악하시는 그런 분으로 하느님을 이해해 왔다.

  그리하여 이런 하느님과 심지어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거래를 하려는 마음 태도를 지니게 되기도 한다.

  하느님께서 지고한 하늘 높은 곳에 계시고, 우리는 이 지상에서 선한 행위를 함으로써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한다고 믿는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하는 선한 행위에는 상을 주시고 악한 행위에는 벌을 내리시는 분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양심을 움직여 주시고, 또 우리가 함께 살고 나누는 관계들의 다양한 양상 속에서, 그리고 우리가 생활하고 활동하는 그 속에서 함께 하시는 성령의 현존에 대해 점점 무감각해지고 결과적으로는 하느님의 현존 의식을 아예 잃어버리게 한다.

  이러한 경향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을 인간의 노력으로 벌 수 있다는 오류가 생겨났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기본 신앙은 하느님께서는 무조건적으로 사랑을 베푸시는 분으로서 우리에게 공짜로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분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당신이 심어 주신 선하고 거룩한 열망 속에 함께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을 향한 우리 마음의 이끌림이 있는 곳에서 성령의 현존을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고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 선한 활동으로 이끌리는 움직임이 자신에게서 비롯된다고 이해한다면 구원은 결코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은총의 선물이 아니라 자신이 버는 것이라고 이해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신앙 여정에서 그리스도는 결국 필요 없게 되어 버린다.

  우리의 선한 행위는 하느님의 은총을 얻기 위한 공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무상의 은혜에 대한 우리 자신의 응답인 것이다.

  그분의 성령이 우리의 영혼과 결합하여 우리를 이끌어 주심으로써 비로소 자유와 신앙의 진정한 의미를 가진다. 즉 지금 이 자리에서 성령의 이끄심에 응답할 것인가 아니면 거부할 것인가 자유롭게 선택해야만 한다.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는 우리의 모든 선한 행위는 성령의 이끄심에 대한 응답이며 성령께서는 우리의 마음 속에 선하고 거룩한 열망의 모습으로 현존하시면서 우리가 바로 그 선하고 거룩한 열망을 향해 변화되어 가도록 이끌어 주시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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