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회원가입 | 사이트맵 | 즐겨찾기등록
산위의마을가입 / 아이디·비밀번호찾기
제   목 : 삼위일체 아닌 것이 무엇인가?
작성자 : 박신부 조회 : 250           2017-06-11 11:18:05

삼위일체 아닌 것이 무엇인가?   

삼위일체에 대한 몰이해는 삶에 대한 이해가 미치지 못한 것일 뿐이지 신비의 학문이나 신앙이 아닙니다. 왜 하나라면서 셋이라고 하느냐?는 언어의 불규칙성일 뿐이지 하나면서 여럿 아닌 것이 없습니다.

모든 존재는 서로 한 몸이라는 관계론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은 하느님은 한 분이시며 세 위격으로 존재하신다는 삼위일체 교리가 너무나 당연하고 옳고 마땅합니다. 관계론적 세계관은 생태주의와 공동체 영성의 기초이지요.

삼위일체를 신비라고 말하거나 가르치는 것은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것에는 모두 신비라고 말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만물이 홀로 존재하지 않고 유기적 관계로서 존재하니까 한 분이시면서 삼위라는 게 자연스러워야 하는 건데 하나면 하나고 셋이면 셋이지!’ 하는 사유방식은 우리의 존재와 삶 전체가 삼위일체로 사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물고기가 바다를 모르듯이.

철학적 사유와 물리적 과학은 신비를 깨우쳐 일상화 시키고 삶의 도구로 만듭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를 신비 차원에 놓고 생각하는 것은 신앙을 우상화 하게 만들 것입니다.

존재일체란? 두 측면에서

하나는, 존재의 얼개(構造)의 측면인데,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의 생명이라는 것, 즉 있는 모든 것은 하나의 얼개로 되어 있는 한 몸(一體)’일 뿐 홀로 존재하는 것이란 없습니다. 지렁이도 민들레도 햇빛과 비와 계절의 변화와 관계하면서 서로 유기적으로 상생합니다. 하나의 생명이기에 관계 사슬이 끊어지면 생태의 위기가 옵니다. 호랑이가 사라져서 멧돼지가 재앙의 수준에 이르고 있지요. 강을 막아놓으니 저 모양이 되지요. 하찮은 생명이라고 업신여기고 밟아버리는 것은 내 신체 하나의 기능이 떨어져 나가는 것과 같아서 몸으로선 불완전한 장애자가 됩니다. 그래도 살아갑니다. 일체이기에 그 불완전한 것 까지도 완전함과 어울려 하나의 몸을 이루기 때문이지요.

또 하나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기 몸(個體)을 가졌다는 것, 즉 존재의 개별성 모양과 방식을 가진 독립적 일체입니다. 민들레는 씀바귀가 아니고 약효도 다릅니다. 개인은 하찮은 듯 보이지만 우주의 별처럼 존귀하고 빛나고 향기를 지닙니다.

내 생각이지만, 본래 존재와 현상을 동양에서는 ()’()’으로 말합니다. ()는 존재이고 용()은 작용기능() 입니다. 삼위일체는 신의 존재양식인데 신이라고 부르는 모든 신은 하나이시고 그 하시는 작용은 처처에 가득하십니다.

천주전능하시뇨?.... 천주무량하시뇨?’

천주(天主) 전능하시니.... 천주무량(無量)하시니, 아니 하시는 일 없이, 아니 계신데 없이 곳곳에 다 계시나니라’(요리문답).

나 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아내와 남편 자식 가족을 볼 때, 친구, 노동하는 동료를 볼 때,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볼 때 삼위일체 관계로 공존하는 사이라는 것을 고백해야 평화가 있고 기쁨과 행복이 가능합니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누군가의 보호와 도움으로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나는 한 평생 한주먹의 쌀도 배추도 생산해 보지 못하고 자판기만 두드리고 살아왔는데도 때가 되면 밥이 나오고 한 끼니도 굶지 않고 살아왔는데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인 삼위일체적 삶의 관계 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존재가 곧 하느님의 존재 증거이고, 내 삶이 곧 삼위일체의 증거입니다. 나는 곧 삼위일체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나는 여럿이 한 몸인존재로 살아갑니다. *

 

No | 제목 | 첨부 | 작성자 | 조회 | 등록일
641 마음이 안 놓이는 자식 (0)   박신부 19 2017-09-21
640 순교자가 믿었던 세상 (0)   박신부 30 2017-09-20
639 하느님, 내 곁에 현존하시네 (0)   박신부 52 2017-09-19
638 내게 주신 최후의 선물 (0)   박신부 78 2017-09-15
637 번뇌와 고통을 어떻게 할 것인가? (0)   박신부 81 2017-09-14
636 교육을 살려내는 길 (0)   박신부 74 2017-09-10
635 그대의 존재는 얼마나 고귀한가 (1)   박신부 69 2017-09-08
634 예수님, 저를 구원하소서 (2)   박신부 93 2017-09-05
633 구원은 어디서 오는가? (1)   박신부 87 2017-09-04
632 톨스토이와 도로시 (1)   박신부 109 2017-08-31
631 그대 행복자로다 (2)   박신부 125 2017-08-31
630 무엇이 옳고 그른가? (1)   박신부 82 2017-08-30
629 헤로데의 국정 농단 (1)   박신부 65 2017-08-29
628 한국의 종교, 어디로 가고 있는가? (0)   박신부 89 2017-08-28
627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1)   박신부 130 2017-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