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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연중 제15주일
작성자 : 공원표야고보 조회 : 345           2022-09-03 06:06:50
2022년 7월 10일 연중 제15주일(D+524)

  오늘은 연중 제15주일입니다. 자비로우신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정신을 사랑의 계명으로 요약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사려 깊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어렵고 힘든 형제들을 돕도록 합시다.

  찬미예수님!
  오늘 복음은 어떤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께 질문하고, 예수님께서 답하시면서 발생한 이야기입니다. 율법 교사는 유다교 사회의 기득권층에 속합니다. 그는 무엇을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 율법에 대해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그가 예수님께 질문한 것은 그분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복음은 말합니다. 그 질문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서에 어떻게 되어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율법 교사는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했다고 답합니다. 예수님은 그대로 실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율법 교사는 자기가 사랑해야 할 이웃이 누구냐고 다시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착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를 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강도들은 그가 가진 것을 모조리 빼앗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습니다.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해서 지나갔습니다. 레위도 거기까지 왔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해 갔습니다. 드디어 사마리아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강도 맞아 반쯤 죽게 된 사람을 보자 가엾은 마음이 들어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로 치료해 주고, 그를 나귀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 간호해 주었습니다. 다음 날 그는 여관 주인에게 돈을 주면서 간호를 부탁합니다.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아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맞은 사람을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마치시고 예수님은 율법 교사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하고 율법 교사가 대답하자, 예수님께서는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율법 교사의 질문은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사랑해야 하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야기에 나온 사마리아 사람처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가엾이 여기고 돌보아 주는 이웃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농촌유학센터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2년에 한 번씩 응급처지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올해도 6월에 수안보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전에는 교육을 받으면서도 자신이 생기지 않았고 내가 과연 그런 상황에서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올해는 나도 할 수 있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에 친구들과 함께 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위급한 상황에 처한 다른 사람을 돕다가 의도하지 않은 불의의 상황에 처하더라도 정상참작 또는 면책을 받을 수 있다는 착한 사마리아인 법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선한 의도에서 한 일임에도 피해를 받게 된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를 하는 친구도 있고, 그렇다면 누가 선뜻 나서서 도움을 줄 수 있겠느냐는 얘기를 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복음에 나오는 사제와 레위는 하느님을 위해 일한다고 알려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성전과 율법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성전은 “돌보아 주고 가엾이 여기는 선하신 하느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상징하는 건물입니다. 율법은 하느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계시기에 하느님의 선하심을 사람이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생활 지침입니다.

  사제와 레위는 하느님 섬기는 일을 전담하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하느님에게 제물을 봉헌하게 하면서 성전에서 일합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맡겨진 일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우월감을 가졌습니다. 그들이 하느님을 배경으로 우월감을 가지면서 전하는 하느님은, 사람들 위에 무섭게 군림하는 분이었습니다. 율법 교사와 사제들은 율법과 제물 봉헌에 충실하지 못한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엄하게 벌하신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들이 믿는 하느님은 사람을 돌보지 않고, 가엾이 여기지도 않으며, 선하지도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제와 레위가 강도 만난 사람을 돌보지도 않고 가엾이 여기지도 않는 것은, 그들이 믿는 하느님이 율법 준수와 제물 봉헌만 바라보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은 예루살렘 성전과 이스라엘 율법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는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된 사람을 보고 가엾이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면서 이웃이 되어 주었습니다.

  성전과 율법은 사람들이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깨닫도록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사제와 율법 교사는 성전과 율법의 중요성을 강조한 나머지, “돌보아 주고 가엾이 여기는” 선하신 하느님을 잊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원초적 체험, 곧 “돌보아 주고 가엾이 여기시는 하느님”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그 하느님이 우리 안에 살아 계시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돌보고 가엾이 여기는 일을 실천하는 우리 삶 안에 하느님은 살아 계십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 자비롭고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기에,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실천하고 측은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유일한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명하는 바는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서로 사랑하시오.”(요한 15,17) 

  예수님은 하느님의 생명이 하시는 일을 알려주고 실천하셨습니다. 초기 신앙인들이 그분을 하느님의 아들이라 고백한 것은 그분이 하느님의 생명을 충만히 사셨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사람들을 측은히 여기고 고치고 살리셨듯이, 우리도 그렇게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랑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여러분이 서로 사랑을 나누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여러분이 내 제자들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요한 13,35)

  사마리아 사람처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 이웃이 되는 것이 사랑입니다. 자녀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부모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최선을 다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그것은 문자의 계약이 아니라 영의 계약입니다. 실상 문자는 사람을 죽이지만 영은 사람을 살립니다.”(2코린 3,6)

  사랑은 문자인 율법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성전과 율법에 충실한 사제와 레위는 초주검이 된 사람을 버려두고 갔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돌보고 살리라는 말은 율법의 문자에는 없습니다. 율법을 모르는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를 만나 죽게 된 사람을 보자, 그를 가엾이 여겼습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그를 살렸습니다. 그는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한 것입니다. 

  하느님은 자비롭고 선한 마음 안에 살아 계십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계획하고 만든 일 안에 우리 계획의 산물로 살아 계시지는 않습니다. 오늘 1독서 신명기는 말합니다.

  “말씀은 하늘에 있지 않다. --- 그것은 너희에게 아주 가까이 있다. 너희의 입과 너희의 마음에 있다.”(신명30,12.14)

  가엾이 여김은 사마리아 사람의 마음에도 있고 우리 마음에도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실천하면 하느님의 숨결이 우리 안에 살아 계시고,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가 됩니다.

  우리는 모두 좋은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먼저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이깁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진정한 이웃으로 오셨습니다. 우리도 모두 따뜻한 이웃이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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