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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교육을 살려내는 길
작성자 : 박신부 조회 : 134           2017-09-10 11:43:07

교육을 살려내는 길

학교 폭력 사태를 보면서....  

청소년 폭력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저의 학창시절에도 학교 폭력은 있었습니다.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들은 맨 뒷자리에 앉아 졸고 오전수업만 하고, 도시락 절반 잘라먹기, 컨닝 요구하기, 당번 안하기, 모자는 교문에서만 쓰기, 티꺼운 놈 손봐주기, 가끔은 담배피우다 걸려 정학도 당하고.... 우리 모두 조금씩은 해당되겠지요? 예나 지금이나 청소년은 청소년입니다.

그래도 의협심은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키가 작고 착한 친구는 건들지 않고 장애 있는 친구는 놀림으로부터 보호해주기도 합니다. 싸움을 해도 상대가 한 두 대 터지고 더 이상 대항을 안한다면 주먹질 중단하고 피도 닦아주고 그랬습니다. 가끔은 본교생이 다른 학교 아이에게 맞고 오면 복수하러 출정도 하곤 했지요. 노는 친구들의 주류는 무도반, 운동부, 깡다구등으로 불렀는데 빈곤하거나 불우한 가정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교사에게 들었는데 요즈음 폭력의 양상은 다르다는 겁니다. 부유층 가정에다 공부도 아주 잘하는 애들이 깡패처럼 거르리고 왕초 노릇 하고, 장애자나 약한 친구들을 괴롭히고 선생님을 우습게 알고 조롱하는 폭력성까지 드러낸다는 겁니다. 염치를 모르는 그런 심성이  집단폭행의 무자비함으로 드러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최근 폭력 학생 문제에서 공통점이 느껴지는데, 경찰의 초동수사와 학교의 대책이 대부분은 가해자 편을 들어 매우 편파적이었고 피해자에게 전학을 가라고 한다는 것 아닙니까?  보도되지 않은 불공정 처리 사건은 엄청 많겠지요.

청소년 문제의 일면들은 도덕과 윤리, 노동 없는 교육의 결과 현상이라 생각됩니다. 첫째는 가정교육이 사라졌지요. 예의염치는 교육의 기본인데 가장 큰 몫을 가정이 담임합니다. ‘군사부일체라 했듯이. 엄교(嚴敎) 없이 신체와 경쟁력만 성장시키는 부모의 왜곡된 자녀 사랑이 품성과 관계적 삶의 정신과 영혼을 장애로 만들어 놓습니다.

둘째는 학교와 교사가 도덕과 품행의 교정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예의염치 교육은 교사의 몫에서 떠났습니다. 우리 시대 선생노릇은 스마트폰, TV님이 맡고 있습니다. 성적 올리는 공부야 전문학원 강사를 따라갈 수 없으니 학교의 권위는 무엇에서 찾습니까?

셋째는 교육의 주-객체가 전복된 문제입니다. 가르치고(가르칠 : 교사) 배우는 것(배울 : 학생)의 관계성이 없어지고 예의염치를 가르칠 교권이 보이지 않습니다. 학교의 주체는 학생이지만 교육의 주체는 교사입니다.

학생에게 필요한 도덕과 품행과 지식을 가르치는 것은 교사의 본분 학교의 존재이유, 배워 몸에 익히는 것은 학생의 본분이고, 삶에 습관화 시키는 것은 가정의 역할입니다. 교사는 있지만 스승은 없고 학생은 있지만 제자가 없고, 학부모는 있지만 모성성(母性性)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학생의 개성과 자유, 인권과 체벌금지만 강조하다 천박한 현장이 되어버린 교육 현실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습니다. 교육현실의 타락은 생활노동과 예의염치, 교권이 소멸된 시대현상 자체입니다.

정부는 교권의 복구에, 가정에서는 자녀에게 생활노동의 강조에, 학생은 피교육생의 신원을 분명하게 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2017.9.8.) *

노동 없이 교육이 되겠는가? 생활이 교육이 되게 하라!”-비노바 바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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