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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 미치는 두려움의 작용
삶 속 존재하는 두려움
우리의 주된 두려움은 상실과 변화에 관한 것이다. 예를 들어, 떠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자기 노출에 대한 두려움, 타인에 대한 두려움, 다른 사람들의 기분에 대한 두려움, 거절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 주고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떠나가고 다가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공허감을 포함하는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 등이다.
물론 이런 것들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늘 겪는 것들이다. 삶에는 다음과 같은 네가지 진실한 모습이 있다.
우리는 결국엔 혼자라는 것.
모든 것은 순간에 불과하다는 것.
삶은 예측불가능하며 종종 불공평하기도 하다는것.
고통이란 보편적 경험이라는 것.
이 네가지 각 경우를 어른이 반응하는 것과 두려움에 떠는 아이가 반응하는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홀로 되엇을 때의 어른을 보자. 그들은 홀로 되엇을 때 지지자를 찾거나 아니면 외로움의 감정과 씨름을 한다. 이 상태에서 어른은 잊으려고 하거나 도망가지 않고 주시하는데, 이는 상황에 대한 판단, 집착, 두려움, 갈망은 접어두고 현재의 어려움이 주는 상황을 관찰하는 것이다.
반면, 겁 먹은 아이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 그 아이는 홀로 있는 상황에 대해, '아무도 나와 함께 있고 싶어 하지 않아. 나는 결국 홀로 죽게 될 것야' 라고 느끼며, 그것을 타인이 자신에 대해 좋지 않은 판단을 내린 결과라고 생각한다. 아이는 이러한 소외감을 채워줄 방법을 찾으면서 외로움을 느끼지 않기를 바란다. 도움을 줄 지지자를 찾지 않고 단지 외로움을 잊게 해 주고, 공허감을 채워줄 누군가를 찾는다. 자신의 힘으로는 이러한 외로움을 감당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른은 만물의 순간성에 대해, 곧 인생의 모든 것이 단계를 거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모든 것들은 부상하고, 정점에 이르다가 쇠락한다. 그리고 이 종모양의 곡선은 우리가 경험하는 삶의 특징과 같다. 두려움을 느끼는 아이처럼, 우리는 변치 않고 영원히 정점에만 머무르려고 한다. 그 무엇인가에 집중하거나 매달려서 정점을 계속 유지하려고 애쓴다.
"당신을 사랑했지만 이젠 마음이 더 이상 셀레지 않아. 다른 사랑을 찾아가야겠어. 낭만적인 사랑이 사라지고, 더 성숙한 사랑을 위해 갈등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이것은 "당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계속 유지하라." 고 말하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우리 눈 앞에 벌어지는 상황을 통해 네 가지 삶의 진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모든 것은 예측 불가능하며, 때때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겁 먹은 아이는 변치 않는 것을 바라고, 피난처를 찾으려 한다. 우리는 사람, 종교, 지도자, 신앙과 같은 것에 매달리거나 그 외 중독될 수 있게 하는 것들을 찾으려고 애쓴다.
또 모든 것이 관리와 통제가 잘 되어가고 있다고 느낄 때 안심한다. 그러나 두려움을 겪으며 살아온 어른은 만물의 예측 불가능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여 해결책을 찾으려고 애쓰지 않게 된다.
"어떤 일들은 내 계획대로 되지만, 내 계획과 정반대로 되어가는 것들도 물론 있다. 이것이 삶의 진실이다."
이렇게 인정하는 자세는 예측 불가능함에 대처할 수 있게 한다. 이는 역설적이지만, 그러한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들, 즉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들에 대처할 수 있게 된다.
사실 이 삶의 조건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세상에는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이 있지만 별 문제없어. 괜찮아." 라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삶이 보여주는 또 다른 진실은 모든 것이 항상 공평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때때로 악이 활개치고 선이 억압받을 때도 있다. 인간사에 있어서 모든 것을 공정하게 판단해 주는 그 누군가는 없다. 하지만 겁 먹은 아이는 공정한 판정을 해 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모든 것을 잘 아는 판사가 정의를 되찾고 나쁜 사람을 벌하며, 무고한 사람들에게 상을 줄 것이라고 믿는다. 인과응보에 대한 믿음 같은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겪는 현실은 이와는 상당히 다르다. 심지어는 전혀 관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은 누구나 고통을 겪는다. 착한 사람에게는 악재가 닥치고 나쁜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 생기기도 한며,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이는 예측할 수 없다. 나쁜 사람이 벌을 받을 것이라는 아이 같은 바람은 차라리 버려야 한다. 이는 동정심 보다는 복수심으로 가득찬 자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상처와 배신과 같은 고통들은 우리의존재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영향을 미친다. 곧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모든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가 성장하는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모두가 각 부분에서, 그것이 순기능이든지 역기능이든지 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고, 나아가 고통을 준 사람을 용서할 수 있을 것이다.
화를 내고 분노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결국에는 다 용서하고, 그것이 일어나야 할 일이었음을 알아야한다.
니체는 "위대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악이나 고통과 같은 것들을 겪어야 한다." 라고 말했다.
"만족을 모르는 사람은 편안한 의자를 찾지 못한다."(벤자민 프랭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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