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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9일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
천사라는 말은 하느님의 심부름을 하는 영적 존재들의 직명이지 그들의 본성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그래서 한국과 중국에서는 오랫동안 천신이라는 본성을 가리키는 이름을 사용했다. 그러나 본래 메신저를 뜻하는 천사라는 말은 중세기 초부터 일반화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느님의 뜻을 인간에게 전하고, 인간을 보호하고, 인간을 도와주고, 인간을 위하여 하느님께 기도하고, 때로는 사람을 벌주기도 한다.
천사놀이
지상에 살고 있지만 서로를 조금씩 위해주고 용서하며 사랑하는 순간은 날개가 없어도 천사가 되는 것임을 나날이 새롭게 배웁니다. 다른 이를 위로하고 웃게 만들려면 내가 더 많이 울어야 하는 것이라고 다른 이의 짐을 가볍고 자유롭게 해 주려면 내가 더 많이 구속되고 무거울 수 있는 용기를 감당하는 것이라고 내 안의 천사가 일러줍니다.
이해인 수녀
가장 작은 것에서 은총을 찾자. 그러면 가장 큰 것을 소망하게 되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믿는 은총을 함께 얻게 되리라.
하느님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또 우리에게 의미있는 방법으로 우리와 만나 주신다. 때로는 개인적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에게 딱 맞는 방법으로 만나주신다. 하느님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우리에게 오신다. 우리가 그것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지.
하느님은 어느때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장소나 상황에서 우리와 만나실 수 있다. 또 우리의 영적인 집이 꼭 깨끗해야 하느님이 들어오시는 것은 아니다. 주도권은 하느님께 있다.
하느님은 저마다 바쁘거나 힘들거나 불안하거나 겁에 질린 사람들에게, "네가 나를 만날 마음가짐이 되어 있다면 나는 언제라도 너를 만나겠다."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만일 우리가 지금 있는 자리에서 하느님을 만난다면, 그 자리가 바로 하느님을 뵙는 자리가 될 것이다.
우리 생활이 안정되거나, 자녀들이 출가하거나, 회개하고 질병이 낫고, 더 종교적인 사람이 되고, 보다 온전히 기도를 바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왜나하면 하느님이 지금 준비되어 계시기 때문이다. 주도권이 우리가 아니라 하느님께 있다.
라르슈 공동체, 지적장애인과 가족으로 친구로 살아오신 장 바니에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의 필요에 민감해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아름다운 속성이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자기중심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다. 이웃의 필요보다는 자기 자신의 필요에 더 민감해지도록 길들여져 있기에,이웃을 위한 사랑의 민감성을 잘 키워나가도록 더욱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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