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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연중 제26주일
작성자 : 공원표야고보 조회 : 608           2022-10-02 20:47:40
2022년 9월 25일 연중 제26주일 (D+601)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오늘은 연중 제26주일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108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을 맞아 “이주민과 난민과 함께 미래 건설하기”를 강조하셨습니다.

  교황님은 “바다의 보화가 너에게로 흘러들고 민족들의 재물이 너에게로 들어온다”(이사 60, 5)라는 말씀에서 이방인의 유입이 풍요로움의 원천으로 표현되고 있음을 강조하십니다. “이주민과 난민의 노동, 젊음, 열정, 희생 의지가 그들을 받아들이는 공동체를 풍요롭게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실천에 대해서는 “미래를 건설하는 데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협력하고자 한다면, 우리의 형제자매인 이주민과 난민과 함께 협력하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찬미예수님!

  예수님께서 어느 날 바리사이들에게 오늘 복음 이야기를 하십니다.
  예전에 부자 한 사람이 있었고 호화롭게 살았습니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주린 배를 채우려 하였지만,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종기를 핥으려는 개들 뿐이었습니다.

  얼마 뒤에 두 사람이 모두 죽어서 라자로는 아브라함 곁으로 가고, 부자는 땅에 묻혀서 죽음의 세계에서 고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이야기를 하신 것은 사후 세계에 대한 정보를 주기 위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 시대 유다인들의 표현을 보면, 아브라함 곁에 있다는 말은, 죽어서 행복하게 되었다는 것이고, 저승에서 고통을 받는다는 말은 사후의 불행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자와 라자로의 이야기는 이 세상에서 재물을 지니고 호사스럽게 산다는 그 자체가 결정적 행복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부자는 재물을 많이 가지고 호화롭게 살아서 행복했습니다. 그는 재물이 주는 행복을 마음껏 누렸습니다. 그는 자기 집 문 앞에 있는 가난한 라자로에 대해 아무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는 라자로를 불쌍히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세상에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신이 게을러서 가난할 수도 있고, 몸이 불편해서 가난할 수도 있습니다. 잘못된 지도자를 만나서 굶주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어찌 보면 이 세상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세상의 불공평을 인간이 서로 돌보고 나누는 노력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하느님은 인간이 이웃과 유대감을 갖고, 돌봄으로 공평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길 바라신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실천할 때 가능한 일입니다. 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람, 목마른 이에게 마실 물을 주는 사람, 나그네를 맞아들이는 사람, 헐벗은 이에게 입을 것을 주는 사람을 하느님께서 축복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 작은 형제들 가운데 하나에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주님께 해 드린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자는 가난한 이웃인 라자로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이 이야기가 지적하는 비극입니다. 인간이 이웃과 유대감을 느끼면, 자기가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눕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이웃과 우리 자신을 비교하고 비난하면서 대립시킵니다. 또 유대감을 외면하고 자기가 우월하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 안에서 계속 반복되던 일입니다.

  19세기 유럽에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기술문명의 혜택으로 인간의 생산성이 높아졌을 때, 유럽의 지성인들은 호언장담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그리스도 신앙이 해결하지 못한 지구상의 가난을 이제 기술문명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드디어 가난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모두가 평등하게 또 풍요롭게 사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 혜택을 공평하게 누리고, 그 시대가 오면 그리스도 신앙은 필요 없는 것이 되어 사라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산업혁명이 이루어지고도 오늘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생산성이 증대되면서 빈부의 격차는 더 심해졌습니다. 부익부 빈익빈이 되었습니다. 기술문명과 더불어 나타난 공산주의는, 재물을 공평하게 나누면 인간 모두가 풍요롭게 사는 지상낙원이 올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에서 공산주의를 실험했습니다. 자유로운 인간의 삶은 사라지고, 모두가 가난 속에서 공평하게 억눌려 살게 되는 사실을 체험하고 공산주의의 실험은 실패로 막을 내렸습니다. 인류 역사는 인간 힘으로는 사람들을 평등하게 살지 못한다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020년 10월 3일에 『모든 형제들』을 발표하셨는데, 회칙의 부제는 ‘형제애와 사회적 우정’이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 사이가 갈수록 단절되고 닫힌 사회로 조각나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기시며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거리를 좁혀가고자 이 회칙을 쓰셨다고 합니다. 사람이 만나는 상대가 누구든, 어떤 집안 출신이고, 어떤 일을 하고, 어느 지역에서 살든, 그런 속성과는 아무 상관 없이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사랑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상대를 형제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어디를 가나 평화의 씨앗을 심고, 가장 가난하고 버림받고 쫓겨난 이들을 자신의 형제자매로 여기고 그들과 함께 걸으셨습니다. 십자군 전쟁으로 폭력이 난무하던 시대에, 이집트의 술탄 임금을 찾아가셨습니다. 성인은 온갖 고난과 위험을 무릅쓰고 언어와 문화가 다른 이슬람 임금을 찾아가셨습니다. 토론이나 논쟁으로 상대를 설복시키려 하기보다는 상대방을 하느님이 빚으신 같은 피조물로서 존중하고 자신을 낮추는 자세를 취하셨습니다. 비록 다른 신앙을 가진 상대라도 그에게 적의나 증오로 맞서기보다는 자신을 낮추며 형제적인 겸손으로 다가가셨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런 형제애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그분으로 말미암은 인간 상호 간의 유대를 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느님이 아버지로 생각되면, 우리 인류는 모두 형제자매로 보일 것입니다. 이웃에 대한 자비와 사랑이 형제자매의 유대를 사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형제 한 사람과의 유대도 소홀히 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가진 것을 은혜롭게 바라보고 갖지 못한 이와 함께 나누는 우리 삶 안에 하느님은 우리 생명의 아버지로 살아 계십니다. 재물, 건강, 시간, 기술, 이 모든 것을 이웃과 나누어 자비하신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살라는 말씀입니다.

  유엔 난민기구가 지난 6월 발표한 ‘2021 글로벌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전쟁과 폭력 사태, 박해 및 인권 침해를 피해 강제로 집을 떠난 사람들의 수는 1억 명이 넘어선 것으로 나타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가장 가난한 이들을 포용하는 것은 하느님 나라에서 온전한 시민이 되는 필수 조건이며, 이 놀라운 조화가 충만하여지려면 이 세상의 온갖 형태의 불평등과 차별을 없앨 수 있도록 그리스도의 구원, 곧 그분 사랑의 복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강조하셨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인간이 똑같은 권리와 의무와 품위를 지닌 존재로 창조하셨고, 서로 모두 형제자매로 살아가도록 부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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