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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연중제17주일
작성자 : 공원표야고보 조회 : 38           2022-08-06 15:32:18
2022년 7월 24일 연중 제17주일(D+538)

  오늘은 연중 제17주일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021년,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으로 고독과 죽음의 고통을 겪는 노인들을 위로하고, 신앙의 전수뿐 아니라 가정과 사회에서 노인의 역할과 중요성을 되새기며 그들의 소명을 격려하고자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을 제정하셨습니다. 7월 교황님의 기도지향도 민족의 뿌리이자 기억의 상징인 노인들이 자신의 경험과 지혜로 젊은이들을 도와 그들이 희망과 책임감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보도록 기도하자고 하셨습니다.

찬미예수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 한 사람이 기도에 대해 가르쳐 달라고 청하고, 예수님은 기도 내용과 기도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가르치십니다.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단순합니다. 목욕재계로 준비하라는 말씀도 없고, 제물을 먼저 바치라는 말씀도 없습니다. 기도를 위한 자세도, 기도를 위한 복장도 없습니다. 기도를 위한 특별한 장소에 대한 말씀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기도 내용을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기도’라고 부르는 내용입니다. “아버지!”라는 호칭으로 하느님을 부르면서 기도는 시작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부르면, 하느님의 시선이 우리에게 오고,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그분이 우리에게 무서운 심판자가 아니라, 아버지가 자녀들을 보살피듯이 사랑하고 베풀고 용서하며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아버지가 함께 계셔서 자녀들이 안심하고 살며 행복하듯이,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그리스도 신앙인도 행복합니다.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인 옛날 사회에 아버지라는 호칭에는 자녀를 위한 어머니의 역할도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생명의 기원이며, 우리를 위해 배려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그분의 생명을 이어받아 살겠다는 결의도 들어있는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 자비로우시며 우리를 고치고 살리신다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여러분도 자비롭게 되시오.”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두려워해야 할 하느님이 아니라, 그분의 자비를 우리가 배워 실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기도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기도는 우리 소원을 하느님께 가져와 말씀드리고 그 성취를 비는 데만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면, 우리 안에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게 되고, 그 실천으로 아버지의 나라가 이 세상에 온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자녀 되는 사람이 제일 먼저 마음에 새겨야 하는 것입니다. 성숙한 자녀는 부모가 자기의 소원을 이루어 주는 것보다 먼저 부모의 뜻을 소중히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빈 다음, 기도는 이어집니다.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우리는 스스로 노동하여 양식을 얻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위선적 기도를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이신 하느님이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자각한 우리는 자신이 노동으로 얻은 일용할 양식을 보아도 베푸시는 하느님을 생각하고, 그분이 은혜롭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는 기도입니다.

  기도는 계속됩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소서.”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보아도, 우리 죄를 용서하시는 하느님이 생각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용서를 실천할 때만, 하느님도 우리를 용서한다고 이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실천하는 용서가 하느님이 우리 죄를 용서하시는 전제 조건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용서하시는 분이라, 우리도 자신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면서 아버지의 은혜로우심을 이웃과 함께 기뻐한다는 기도입니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라는 말로 기도는 끝납니다. 유혹은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듯이 살겠다는 마음입니다. 유혹에 빠진 사람은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듯이 행동합니다. 겟세마니에서 죽음을 앞두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십시오.”(루카22,40) 그리고 예수님은 아버지를 부르면서 기도하십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하고자 하신다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루카22,42) 유혹은 하느님을 생각하지도 부르지도 않는 삶입니다. 유혹에 빠진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이 자기 행동의 유일한 기준입니다. 겟세마니에서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유혹에 빠져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듯 행동했습니다. 그들은 잠들었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 각자 살기 위해 도망칩니다.

  초기 교회의 신자 가정이라면 양초와 마른 빵과 담요를 구비하고 있었답니다. 언제 어느 때고 나그네가 문을 두드리면 불을 밝혀서 집 안으로 들여야 하니까 초가 필요하고, 배고픈 사람을 앞에 두고 빵을 만들 수 없으니 마른 빵을 준비해뒀다가 제공하고, 이 사람이 자고 가겠다면 담요가 있어야 하니까. 그래서 이 세 가지가 신자 가정의 필수품이었다고 합니다.

  주님의 기도로 기도 내용을 가르친 예수님은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을 설명하십니다. 친구를 졸라대는 사람이 친구에게 지닌 신뢰심과 같은 신뢰로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이 지녀야 할 긍정적 신뢰심을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선언하신 다음, 예수님은 제자들이 알아듣게 다시 설명하십니다.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설명하고, 선언하고, 또 설명하는 예수님의 자세입니다. 그분은 함께 계시는 하느님께 깊은 신뢰를 가지라고 제자들에게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자신 안에 갇혀서 하느님을 신뢰하지 못합니다. 제대로 된 자녀는 부모를 신뢰합니다. 노예나 종은 주인을 신뢰하지 않고, 주인 마음에 들어서 혜택을 누릴 궁리만 합니다.

  오늘 우리는 조부모와 노인의 날을 지내고 있습니다. 저의 어머니도 어느덧 노인이 되셨습니다. 또 올해 저는 친척 중에 연로하신 분들과 친구 부모님들이 많이 돌아가셨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산문집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 준 한마디』에 나오는 한 대목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부모는 활이고 자식은 화살이라고 했습니다. 화살이 과녁에 명중하기 위해서는 활의 정확도가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안정된 자세에서 정확한 방향을 향해 화살을 힘껏 쏘았다 하더라도 그 순간 활이 흔들리면 화살이 제대로 날아갈 리 없습니다. 부모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활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의 삶의 태도는 곧 자식의 삶의 태도를 결정짓습니다.

  화살인 자녀에게 부모라는 활로서의 바른 자세를 보여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부모가 잘못 만들어진 활이라면 자녀 또한 잘못 날아가는 화살이 될 게 뻔합니다. 이미 잘못 날아간 화살을 활은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부모로서의 활의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면 화살로서의 자녀도 어쩌면 바람직하지 않은 삶의 방향으로 날아가 버릴지도 모릅니다.

  화살이 멀리 날아가려면 활의 몸이 많이 휘어져야 합니다. 가장 멀리 날아간 화살은 등이 가장 많이 휜 활에 의해 날아간 화살입니다. 부모라는 활이 자식이라는 화살을, 성공이라는 인생의 하늘 속으로 멀리 날려 보내려면 부모의 몸과 마음 또한 크게 휘어져야 합니다. 휘어지면서 아무리 힘이 들어도 그 고통을 견뎌내야 합니다.

  실제로 늙은 부모의 육체는 등이 활처럼 굽어집니다. 그동안 화살인 자식을 위해 끊임없이 노동하며 활의 역할을 다해왔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활처럼 깊게 휘어지는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자식도 그만 자기 자식의 활이 되고 맙니다.

  복음은 우리가 청할 것은 성령이라는 말씀으로 끝맺습니다.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 그분의 숨결인 성령이 우리 안에서 일하십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조르고, 구하고, 문을 두드려서 얻어 내야 하는 것은 성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드러나고,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우리의 죄가 용서되는 이 모든 것은, 성령이 오시어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큰 신뢰로 다가가야 할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 소원을 성취해 주는 요술 방망이가 아닙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실천을 우리가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인색하던 우리가 관대한 마음을 갖고, 명예와 허례허식을 탐하던 우리가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학문과 예술을 익히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을 합니다. 우리가 신앙 안에서 배우는 것은 하느님의 생명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아니기에, 많은 실패를 겪으면서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실패를 무릅쓰면서도 하느님을 배우겠다는 우리 마음속에 성령께서 숨결로 살아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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