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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노동의 영성
작성자 : 박신부 조회 : 142           2018-06-01 21:59:14

    노동의 영성

한 수녀님 이야기: 사회복지 시설 책임자를 마치고 해외 선교를 다녀와 12년 만에 본당으로 소임을 받았다. ‘본당의 날준비로 구역반장님들과 국수잔치에 대해 논의하는데 대다수 의견이 국수 준비를 식당에 주문하자는 것이었다. 육수도 만들고, 삶고 일할 시간에 다른 일을 할 수 있어 간편하고 쓰레기도 식당 쪽에서 책임지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좋다는 것이다. 그전에도 몇 번 해봤지만 당연히 교우들이 국수를 만들고 설거지를 하곤 했었는데 교우들이 돈은 자신들이 내겠다면서 직접 주방일 하자는 견해에 아무도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느 회사 중역 이야기: 여직원들이 회사 까페에서 차를 마신다. 마침 TV에서 저출산에 대한 멘트가 나온자. 각자 한 마디씩 하는 거다. “아이 하나를 낳고 기르는데 비용이 얼마가 들어가야 하는데 두 사람 수입으로 어떻게 둘째 셋째를 가질 수가 있겠어?” “가정과 직장을 오가는 하루 일과가 강제 노역처럼 힘들고 바쁘고 얘 하나도 친정 어머니가 길러줬는데 내가 장군이야?” “어유, 후배들에게도 결혼하라는 말은 생각해서 하게 돼, 결혼으로 한 번 뿐인 인생을 희생하라고 권하고 싶지 않아!”   

그 중역은 이렇게 말했다는 거지: “당신의 어머니는 부자였고 한가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당신과 형제간들을 낳고 기르며 대학까지 보냈나요? 당신의 어머니는 대학을 다니셨나요? 가부장적 관습의 시대에 진짜 전업주부로 살면서 밭노동을 하고 대가족과 대소가내의 온갖 집안일을 챙기면서 가족을 돌보고 자식을 낳고 길러내면서 가정의 중심으로 살아오시지 않았어요?”

나도 그런데 말하고 싶지만 그들은 확실히 꼰대으로 정리해 버릴 것이다.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왜냐하면 지금 나와 함께 살아가는 동시대의 사람들을 불과 50여 년 전 이 땅에 살아가던 우리 부모님의 세대 사람들과 같은 인간으로 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상당한 세대 차이가 나는 정도가 아니라 전후의 두 인류는 이미 다른 것에 의해 양육되고 길러진 DNA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현대 문명의 DNA는 소비문화를 먹이로 주입시킨 기술문명의 산물이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기술개발로 신상품을 출시하면 그 상품은 자신을 이용하는 사람에게서 돈만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척수와 신경세포까지 뽑아내버리는 것이다. 그로 인하여 사람이 태생적이고 창조적으로 지닌 노동의 능력과 공동체 의식성을 상실하고 편리와 향유에 빠진 호모 루덴스가 되는 것이다. 예수살이공동체는 입문교육에서 소비상품이 지닌 DMA상품주의 악령으로 규정짓고 그 성질을 편의성, 개별성, 기술성으로 깨우치고 있다.   

최근 유발 하라리라는 교수는 사피엔스라는 빅셀러를 냈다. 진화론적 역사관으로 침팬지에서 사이보그에 이르는 진화의 혁명과정을 인지혁명-농업혁명-문화혁명-과학혁명으로 분석한 흥미로운 저술이다. 인간은 침팬지를 조상으로 둔 생명체로부터 진화하여 신의 의지와 영역에 도전하는 호모 데우스시대의 도래를 맞고 있다고 말한다. 창조의 생명을 DNA로 삼는 침팬지의 후손들은 설계된 지성인 인공지능의 사이보그에 더하여 그의 DNA로 길러진 변종된 인류라는 세 종류의 삶이 전개될 것이다. 그리고 사이보그와 변종인간이 공생하는 시대에 창조론적 인간은 멸종위기의 천연기념물처럼 사라져 가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이 주인노릇을 하는 근거와 환경은 딱 하나인데 새로운 시대의 노동과 생산을 주도한다는 것이다. 수 만 년을 통해 환경과 조화를 이루면서 삶을 건설하고 진화시켜온 힘은 노동이었다. 인간은 노동하는 인간인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노동을 가장 싫고 저주스러운 대상으로 여긴다. 노동과 생산은 이제 피곤도 모르고 싫은 내색도 오류도 없는 노동자, 암호화 된 인공지능에게 맡기게 되었으니 삶의 주도권은 확실하게 넘어가게 된다. 이러한 미래의 현실을 2~3세기 그리스도론 논쟁의 이론에 빗대어 보는, ‘가현설(假現說)’도 아니고 양자설(養子說)도 아니다. 무엇일까? 사이보그는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이 창조의 질서를 벗어나 신의 의지와 영역을 탐하여 생겨난 인종 이다.   

하느님은 땀을 흘려야 먹고 살리라는 프로그램을 탑재시켜 인간을 창조하셨다. 그 존재론적 조건의 삶을 거부하며 땀흘리지 않고 살고자, 일을 쉽고 적게 하고 많이 받고자, 그리고 무신론적 행복자로 살고자 열망한 대가는 신과 인간의 관계를 멀어지게 한다. 신이 인간을 창조하셨기에 인간은 신을 지켜야만 신의 생명으로 살아갈 수 있다. 국수잔치도 할 수 없고, 결혼도 출산도 조건화 시켜버린 삶의 시대, AI 가 인간을 조종하는 시대에서 기쁜소식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선포할 것인가? 우리 시대의 복음선포는 노동하는 인간상의 복구이다. 제 삶에 필요한 것을 스스로 구하는 삶의 고유한 권리를 뺏기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 소백산이 흐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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