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회원가입 | 사이트맵 | 즐겨찾기등록
산위의마을가입 / 아이디·비밀번호찾기
제   목 : [사순 4주일 강론] 은총의 사순절, 성찰과 회개
작성자 : 박신부 조회 : 339           2020-04-03 12:04:56

    [강론] 요한 9,1~41)

은총의 사순절, 성찰과 회개

    1. 찬미예수님,

교우 여러분! 한 주일 동안 강녕하셨습니까? 코로나 독감의 난세에도 여러분들의 가정과 이웃들에게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고 주 천사들의 보호하심이 늘 함께 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2. 코로나 독감으로 인해서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세계가 모두 환란의 때를 겪고 있습니다.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 “주님 저는 믿습니다”(요한 9,38). 오늘 복음에서 소경의 고백처럼 굳건한 믿음으로 주님의 뜻과 창조질서에 순명하는 삶으로 이 난세를 이겨나가도록 하십시다.

    3. 며칠 전 이탈리아의 한 본당 사제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데 1인 방송 카메라 앞에서 오늘부터 잠시 성당을 폐쇄합니다.”는 소식을 눈물을 흘리며 교우들에게 전하는 마음 시린 모습을 보았습니다.

화려한 소비문화로 문명사회를 과시하던 유럽의 명품도시들이 지구종말에 대한 영화에서나 봄직한 유령도시의 텅 빈 거리와 죽은 시신을 군용 트럭에 싣고 외곽으로 나가는 행렬을 외신 뉴스로 보기도 했습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특별히 요양병원에 노부모님을 모시고 있으면서 찾아볼 수도 없는 가족분들의 마음의 슬픔도 생각합니다. 어쩌면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겪는 너무도 생소하고 낯선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듯 여겨집니다.

    4. 저는 요즘 모든 것들이 정지되고 관계가 단절되어 만남도 뜸해진 현실을 대하면서 전인류가 대침묵에 잠겨 사순절 피정을 강제하는 시대의 징표라는 생각도 듭니다.

뜻밖의 재앙 앞에 성당은 텅 비어 있고 성가소리도 강론도 성체성사도 없고 레지오 회합도 없는 교회, 하느님도 느껴지지 않고 구원자이신 예수님도 보이지 않은,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 앞에 선 듯이, 2천년 전 성금요일의 참담함이 이런 것 아닌가 합니다.

    5. 왜 온 국민이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서로 모이지 말라는 것일까요?

철학자 플라톤의 세계관에 의하면 천상에 이데아라는 세계가 있는데 그 영혼의 그림자가 곧 인간세계의 삶이라고 설명하고 있지요.

마스크를 꼭 써야만 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너무 많은 말을 하면서 서로 증오하고 욕설을 주고받아 상처를 내고, 실천도 없이 설교만 넘쳐나고, 집회는 요란한데 스피커 소리뿐 입니다. 내 생각이 반드시 옳다고 여기며 타인의 말은 경청하지 않는 그런 독선으로 살아오지는 않았는가?

그래서 같이 살면서도 서로의 심정과 아픔에 공감이 없고 연민과 측은지심 없이 살아왔지는 않았는가? 이제는 말은 그만하고 서로 경청하며 공감과 배려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상징의 가르침이 마스크 아니었을까?

    6. ? 외출도 삼가고 만나지도 말고 대화도 악수도 말고 자가격리가 필요했을까? 예루살렘 대학의 인류학자 유발 하라리, 호모 사피엔스로 불리는 현생인류가 4만년 동안 수렵생활로 살아오다가 12,000년 전 농사를 지으면서부터 정주생활로 마을을 이루며 살기 시작했다고 가르칩니다

    7. 정주와 농업과 협동의 공동체 방식이 12,000년 오랜 세월 살아오던 기본 양식이었는데 불과 2~300여 년 밖에 안 되는 짧은 근대에 증기기관과 전기와 전자기술이 발명되면서 과학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농업과 정주의 삶이라는 공동체 생활방식을 버리고 부의 증식과 이벤트를 찾아 유목민처럼 이리저리 유동하는 소비와 회유문화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입니.

    8. 오늘의 현대세계는 일용할 양식을 논과 밭에서 생산하지 않고 공장에서 만든 고기와 음식을 먹고 삽니다. 집이 있고 어머니가 있어도 밥을 해먹지 못하고 편리함을 쫓아 외식을 하고 또한 능률을 위해 분업하자면서 자신만은 머리만 쓰는 일을 하고 많은 돈을 받으려는 결과 학력 경쟁과 노동의 소외와 고독에 빠져 살아갑니다.

우리 시대의 농부들은 12,000년 농업역사의 마지막 농사꾼 세대들이 되었습니다. 무형문화제로 기념하게 되겠지요.

공동체가 해체되고 마을이 사라져버리자 아파아트로 살게 되자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면서도 필요한 이웃은 없고 119를 부릅니다.

    9. 개발과 성장의 비교우위론으로 창조질서는 파괴되고 인문사회의 전통과 미풍양속은 소멸되고 말았기에 문명세계의 의식을 깨우치고자 이제 그만 좀 돌아다니고 자가격리좀 하자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아니라면,늘 모이고 만날 수 있었던 일상의 얼굴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함께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선물인지, 누가 내 이웃이고 어머니고 형제자매인지를 다시 바라보라는 각성의 꾸짖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0. 교우 여러분! 우리 시대의 믿음과 소망의 삶은 어디에 있습니까? 안정적인 직업에 있나요? 은행 잔고에 있나요? 투자능력에 있을까요? 고층아파트에 있을까요? 아니면 신천지에 있을까요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대구 경북으로 달려간 경향 각지의 간호사들과 의사들의 모습에서, 방역 의료진과 소방관들에게 도시락을 만들어 보내는 손길에서, 폐지를 줍고 사는 할머니가, 기초생활 수급자 할아버지가 애써 모은 돈봉투를 들고 파출소에 놓고 도망가는 마음에서, 남은 마스크 하나를 들고 동사무소를 찾아오는 어린이 모습에서 진정 우리 시대를 치유하는 희망의 빛을 봅니다. 저는 그 눈물겨운 인정과 연민의 정에서 하느님의 뜻과 구원의 성사를 느낍니다. 아울러 사제로서의 무력함에 한없는 부끄러움도 느낍니다.

    11. 믿음의 교우 어려분

우리는 해마다 돌아오는 사순절을 본당 전례 행사로만 여기고 살아갑니다. 이제는 신앙인들부터 정신 차리라고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것 아닌가 반성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2020년 사순절을 너무나 제대로 보내고 있는 겁니다.

오늘 복음에서 평생 어둠 속에 살아가던 맹인을 치유해 주시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 현대 문명인들은 지성과 밝은 눈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코로나 독감은 우리로 하여금 어둠 속을 헤매는 어리석음을 목격케 합니다. “회개하라!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마태 4,17)는 광야의 외침을 듣고 있습니다.

    12. 거리두기를 하자고 외치는데도 학원이라도 문을 열게 하라고 요구합니다. 모처럼 자녀들을 돌보며 함께 지내는 것이 귀찮아서 입니까? 아니면 남들이 놀 때 수험준비 시킬 챤스라는 겁니까? 그렇게 명문대를 보내고 유학도 보내며 그토록 오랜 세월 공부만 시키고, 그래서 온 국민이 전문가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그 많은 학위와 전문 자격증들은 코로나 독감 앞에서 무슨 도움이 되었습니까? 어려울 때 서로 돕고 같이 사는 기술이 되었습니까? 제 손으로 노동할 수 있는 기술이 되었습니까?

공부시키는 목적은 무엇인가? 공동체 영성의 대부이신 러시아의 문호 니콜라비치 톨스토이는 고급 공부를 하는 목적은 첫째 배운 자에게 속지 않기 하기 위함이요 둘째는 배우지 못한 일자무식도 살아가는데 불편함 없도록 돕기 위함이다.” 라고 가르쳤습니다.

    13.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금년 사순절에 맞는 코로나 독감 사태는 재앙과 저주가 아니라 구원의 삶을 선사받게 하시는 은총의 기회입니다. 예년처럼 그냥 보내지 맙시다. 물신을 우상케 인도하는 자본주의의 탐욕과 지배와 패권의식과 자기중심적 세계관으로부터 나를 열어 회개를 선포하고 복음정신과 공동체 영성으로 새롭게 무장하는 은총의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14. 예수님의 십자가와 죽음이 생명의 부활이 되신 신비를 깨우치는 사순절이 되시기를 빕니다. “내가 문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마시리라!” (묵시 3,20).

성체성사를 통해 오시는 주님, 구마와 치유의 은사를 들고 여러분의 가정에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영접하는 사순절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5. 우리 소백산 산위의마을은 봄이 늦게 찾아옵니다. 이제야 매실나무에 꽃망울이 열리고 생강나무 산수유 제비꽃도 피어나고 있습니다. 보발분교 산촌유학 아이들도 닭과 염소를 돌보며 씨를 뿌리면서 개학을 기다리며 부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꽃이 활짝피는 봄날에 한 겨울 시련을 이겨낸 우리 모두의 믿음을 안고 저 성문 밖으로 나아가 다윗의 자손 호산나!”를 외치며 갈릴래아로부터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영접할 것입니다. 이 방송을 들으시는 교우 여러분 모두의 가정에도 산위의 마을의 기쁨과 축복을 전합니다.

16. 여러분의 자녀들과 이웃과 직장 사업장 모두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셔서 부활의 알렐루야를 찬양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2010.3.22 . 유투브 방송)

No | 제목 | 첨부 | 작성자 | 조회 | 등록일
688 연중 27주일 (군인주일강론) 군인주일은 청년주일 (0)   박신부 55 2020-10-03
687 [김대건 정하상 동료 순교자 대축일 강론] 진실은 반드시 승.... (0)   박신부 77 2020-09-19
686 [연중 23주일] 하느님께서 일하게 하십시오 (0)   박신부 104 2020-09-05
685 [연중 21주일] “예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   박신부 153 2020-08-27
684 [19주일강론] 기도는 쉽게 할수록 좋습니다. (1)   박신부 180 2020-08-16
683 日本 一燈院 공동체 학교 아이 다이지로 교장(박기호 신부 .... (0)   박신부 146 2020-08-16
682 나의 신앙은 얼마나 진실한가? (0)   박신부 161 2020-08-03
681 마음에 뿌리는 씨앗 (0)   박신부 239 2020-07-12
680 두려움은 내게 맡겨라 (0)   박신부 443 2020-05-12
679 부활성야 강론: 생명의 치유를 선포하자 (0)   박신부 451 2020-04-12
678 예수님의 연민과 공감 (0)   박신부 392 2020-04-12
677 [사순 4주일 강론] 은총의 사순절, 성찰과 회개 (0)   박신부 339 2020-04-03
676 [사순 2주일 강론] 그들은 왜 신천지에 빠졌을까? (2)   박신부 659 2020-03-08
675 어둠은 하느님의 거처이시다 (0)   박신부 774 2019-11-13
674 소설 [세 여자] 성소의 다른 길과 옳은 길 (0)   박신부 1367 2019-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