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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마음에 뿌리는 씨앗
작성자 : 박신부 조회 : 239           2020-07-12 09:18:13

마음에 뿌리는 씨앗

연중 15주일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

 

 박원순 시장님의 영혼안식을 기도합니다.

며칠 전 뜻밖에도 박원순 서울시장님이 떠나셨습니다. 한국사회 새로운 시대를 연 시민운동가로서 인권변호사로서 서울의 품격과 시민을 위한 시장으로 서울의 미래를 만들어 가시던 분이셨는데 몇해 전 노회찬 의원님에 이어 훌륭한 정치인을 잃게 되어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우리 산위의마을이 3년 전 보발분교 폐교반대운동을 할 때 작은학교 살리기를 지지하시는 시장님께서 이런 격려사를 보내주시기도 했었습니다.   

" 아이들은 하나의 씨앗, 한 개의 도토리입니다.

작은 도토리가 거대한 참나무로 자라납니다.

그 작은 도토리 씨앗 속에 참나무의 힘이 모두 들어있습니다.

여기, 다섯 알의 도토리가 있습니다. 전교생 5명의 보발분교가

폐교 위기로 부터 학교를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그 작은 도토리 안에 참나무로 자라날 힘과 열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다섯 알의 도토리에서 나타날 참나무가 기대됩니다.

보발분교 아이들과 보발리 주민 여러분에게

위로와 격려의 작은 꽃 한 송이를 보냅니다."

    애석한 마음으로 박원순 시장님의 영혼이 하느님 품 안에서 슬픔과 번뇌를 거두시고 평화의 안식에 영면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아직도 종식되지 않고 있는 코로나 정국에 우리 성당에까지 감염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어쩔 수 없는 시절입니다. 성당에 가지 못하시는 분들이 아직도 많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이렇게 개인방송을 드리게 된 것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와 공동체적 삶에 절대 필요한 덕목은 인간에 대한 연민과 배려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민중들에게 보여주신 마음이 곧 긍휼한 마음과 연민의 눈길이셨고 그들의 처지에 대한 공감과 배려가 곧 치유의 기적이라는 것이 복음의 가르침입니다.

  서로 공감하기 위해서는 소통을 위한 대화가 필요하지요? 어떻게 하는 대화가 좋은 대화일까요? 우리 모두는 어린 시절부터 학교를 다니면서 많은 공부를 하고 교육을 받고 졸업장도 받고 살아왔습니다. 교육의 목적은 자녀들이 일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지식을 학습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학교교육은 인간이 평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들은 정작 가르치지 않습니다.

평생 노동하며 돈을 벌고 살아갈 것인데 노동의 가치에 대하여 돈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한 과목도 한 시간도 가르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한 평생 가족과 이웃과 대화를 하면서 서로 소통하고 살아가는 삶인데 대화법에 대하여 단 한 과목도 배운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주일은 서로 이해하고 인정하고 또 처지를 동정하고 공감하는데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는 진실을 보려는 노력입니다. 상대방의 말을 듣고 이해하고 진실을 보려는 비판적 자세를 기본으로 갖추는 것입니다. 하급자가 말을 하건 자녀들이 말을 하건 그 말을 진지하게 듣는 노력이 가장 중요한 소통의 조건입니다. 소통이 안되고 막혀서 자기고립을 쌓는 결정적인 문제는 무엇이 옳은지를 알려는 인식욕이 없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의 처형시킨 이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무엇이고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경청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로마제국 빌라도 총통과 헤로데와 대사제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에 도전하는 선동가라는 눈으로만 보았기 때문에 처형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갈릴래아 민중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늘 경청했고 희망을 가졌고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이 구원을 위한 희생이라고 믿게 되었던 것이고 그 믿음으로 부활의 소식을 영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왜 같은 사건 같은 십자가를 보면서 누구는 징벌을 받는다고 여기고 누구는 구원을 위한 희생이라고 여겼느냐? 진실이 중요한 것이고 진실을 접수할 수 있는 태도가 경청입니다.   

같은 한 알의 씨앗이지만 갈릴래아 사람들의 경청하는 마음의 밭에서는 백배의 열매를 맺었고 권력자들의 돌밭에 떨어진 씨앗은 새가 쪼아 먹어버렸다.” 하신 거지요.

이것은 정치적인 차원뿐일까요? 가정에서도 부부간에 자녀간에 또 이웃과 직장에서도 동료와 상사간에 그러 합니다. 하급자와 아내와 아이들의 생각을 무시하고 네가 뭘 알어?” 묵살하고 배척하지요,   

인간의 몸은 위대한 능력을 탑재하여 창조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제 눈을 보고 와이셔츠 단추 구멍 같다고 하는데 저는 이 작은 눈으로 세상의 많은 것을 다 볼 수 있습니다. 귀 구멍은 이렇게 작지만 세상의 아름다운 음악과 소리와 사랑하는 사람의 속삭임과 호소를 다 들을 수 있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존재와 소통할 수 있습니다.   

귀가 닫힌 사람들은 대화도 소통도 안되고 더 큰 것을 보는 눈도 감기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진실을 들을 수 없습니다. 세상의 속임수에 걸려들기 좋은 먹이감이 됩니다.

지위와 권위로 묵살하고 갑질하는 일들만 생길 뿐이니 사업도 안되고 승진도 안되고 가정의 평화도 없습니다.   

귀가 막히면 경청할 수 없어 진실과 멀어지게 마련인데 그것보다 더 나쁜 것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 입니다. 맨 날 가짜뉴스 방송이나 듣고 있는 분들이 있어 걱정됩니다. 진실을 보는 시력을 상실해 장님이 되고 말 것입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파성을 가지고 성당에 앉아서 사제의 강론을 비판하거나 듣기 싫어하는 교우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런 태도가 바로 주님의 제단 앞에 와서까지도 성령에 귀를 닫고 악령에 포박되어 있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 태도는 예수님께서 일찍이 가파르나움 회당에서 설교하실 때 마귀들린 이 하나가 일어나 왜 우리를 괴롭히십니까? 우리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우리를 떠나 주십시오!”하고 외치던 장면이 생각나게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서로 공감하고 연민을 가지도 협동하고 살아갈 수 있는 위대한 존재로 창조된 존재입니다. 그런데 왜 나에게는 타인의 처지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연민이 없고 인정을 베풀고 싶은 마음도 없고 정의와 진실을 보고 싶은 마음이 나지 않는 것일까요?

공감능력이 부족한 이유는 내 생각이 반드시 옳다는 믿음이 세상에 대해 귀를 닫게 하고 진실을 경청하지 못하게 하는 틀입니다.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는 학벌도 계급도 신분도 사회적 지위도 필요치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순수한 정신만 가지면 되는 것이지요

나는 옳고 내 생각은 틀림없다고 믿는 자기중심적인 태도와 이기심이 순수한 마음을 배척하기 때문이지요. 같은 문제를 놓고서도 서로 평행선을 달리는 TV토론 같은데서 많이 보잖아요. 그런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한다면 씨앗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길바닥의 매마른 땅처럼 성체성사도 예수님도 결코 영접할 수 없게 됩니다.   

하느님 앞에 부족할 수 밖에 없는 인간으로서 하느님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고 경청하는 마음으로 십자가를 바라봅시다. 그렇지 못하면 십자가는 결코 구원의 나무가 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이 축복이 될 수 없고 하느님을 모독하는 죄업만 쌓는 것이겠지요. 양선한 심성과 선의로운 의지로 경청의 능력을 가진 교우 여러분들은 주님의 축복과 은총과 정의와 평화가 함께하실 것임을 믿습니다.   

서로 소통하기 위한 두 번 째 조건은 대화의 환경을 만드는 일입니다. 대화할 때는 어떤 옳고 그름 이전에 마음을 먼저 얻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누구와 대화할 때 상대방이 어떤 말을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말하느냐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싫은 사람이 말하면 아무리 옳은 말이고 좋은 의견이라고 하더라도 그래도 그렇지 이 사람아!” 하고 비토해 버리면 끝입니다.   말이 안 통하는 겁니다. 돌처럼 굳은 밭에 씨앗을 뿌리면 뭐합니까?

대화 상대와 마음이 먼저 통해야만 내 말이 그의 품에 들어가 좋은 열매를 맺게 합니다. 씨 뿌리는 땅도 중요하지만 좋은 땅인가 보고 제대로 뿌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아내와 대화할 때는 먼저 아내의 마음을 얻고 자녀와 대화할 때는 자녀의 마음을 먼저 얻어야겠지요.   

우리는 날마다 일어나는 사건들로부터 교훈을 얻으므로서 진실로 하느님의 진리가 무엇이고 정의를 따르는 길이 무엇인가를 깨우치려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나에게 와서 열배 백배의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 지혜를 얻는 길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지금 난세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시장경제 시스템이 금융경제로 인해 머지않아 종말을 고할지도 모릅니다. 민족의 통일은 이념 경쟁에서가 아니라 선진국 패권주의 금융자본에 의해 결정날 확률이 훨씬 커지고 있는 혼란의 시대입니다.

인류의 탐욕에 의해 학대받던 자연의 역습이 홍수와 지진과 역병의 얼굴로 시작되고 있다는 학자들의 경고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때는 나를 바로 세우는 회개의 삶이 중요합니다. 오직 복음정신에 의해서 나를 바로 세우고 자녀교육과 가정을 바로 세우고 민주주의 가치를 바로 세워야 하는 과제가 소명으로 들려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혼란의 시대에 인류의 평화와 구원의 길을 밝히러 오신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님의 유훈과 유업을 실현하는 복음주의 정신의 신앙만이 우리를 홍수와 지진과 역병의 환란에서 굳건하게 서 있게 하고 진리를 갖추고 새 하늘 새 땅 새로운 삶과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입니다.   

여전한 코로나 정국으로 사회적 생활의 거리두기를 강조하는 시절입니다. 여러분과 가족과 이웃들 두루 건강하시고 활력을 잃지 않는 생활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아멘.  (2020.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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