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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연중 23주일] 하느님께서 일하게 하십시오
작성자 : 박신부 조회 : 105           2020-09-05 23:36:36

연중 23주일 강론  

하느님께서 일하게 하십시오

(마태 18.15~20 )  

1. 찬미예수님! 한 주일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코로나19로 인해서 몇 주간 정도만 주일미사 영상을 올리면 끝날 줄 알았는데 매주 뵙게 되어 반가우면서도 걱정은 큽니다.

저희 산위의 마을은 자녀를 둔 가정들이 모여 사는 가톨릭 신앙인 공동체 마을입니다. 공동생활과 공동소유의 정신으로 기도생활과, 자연주의 농업노동, 공동체 영성의 자녀교육을 추구하는 마을입니다. 공동체 관심있는 교우 가정들이 입촌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생 자녀들이 마을 가까운 전교생 8명의 보발분교에 다닐 수 있는 산촌유학센터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을 공동체 생활로 초대합니다. “와서 보십시오.”   

2. 하루 이틀 마을을 방문하신 분들은 산위의 마을이 수도원 생활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우리 교회 남녀 수도회들도 부와 사치와 향유를 맹목하는 시대에 세속의 헛된 욕망을 버리고 오로지 하느님의 뜻에 합일되기를 갈망하는 완덕의 삶을 추구하는 복음적 삶을 추구하는 목적에서 출발한 것이지요.   

3. “그들은 서로 가진 것을 내어놓고 필요한 만큼 가져다 썼다. 그들 가운데 가난한 이들은 하나도 없었다.” 사도행전 2, 43: 4, 32 이하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의 예루살렘 부활공동체 이야기가 그것이 전설이 아닌 분명한 초세기 역사적 사실로 믿는다면, 예수 부활을 신앙하는 제자들의 삶이란 바로 그런 무소유의 삶이 우리 시대 대안과 완덕의 삶을 구하는 해답이 되고 구원의 길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정말 진실한 신앙이라면 내 생애에 단 한번만이라고 실천을 해볼 이유와 투신의 가치가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4. 그런데 우리 가톨릭 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남녀 수도생활이 공동생활 전통을 이어오기 때문에 독신자들만의 생활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생활은 아나밥티스트, 재세례파들의 전통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6세기 루터의 종교개혁 주도권을 이어 받은 켈빈주의자들은 종교개혁을 권력화 했습니다. 그들은 개혁을 하려면 제대로 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재세례파 지도자들, 후터, 암만, 메논, 제논 등 원리주의 종교개혁 종파들을 박해했고 3천 명에 이르는 신도들을 화형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후에들이 박해를 피해 공동생활을 하다가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하여 펜실베니아 등지에 자리 잡고 공동체 마을을 이어갔는데 이들을 청교도라고 부릅니다.

지금도 미국과 캐나다 동부 일대에 청교도의 후예들이 아미쉬와 후터라이트, 메노나이트 등 2,000 여개의 유수한 공동체 마을들이 전통을 이어받아 살고 있습니다.   

5. 크리스챤 공동체의 역사에 대한 자료는 저희 마을 홈페이지에도 있습니다. 참조해 주시면 좋고요. 저는 우리 가톨릭에도 자녀와 가정을 가진 이들의 공동체가 하나 정도는 꼭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으로 총대를 메고 산위의 마을을 건립하게 되었습니다만. 수도회가 아닌, 가정과 자녀들의 공동생활의 경험을 배우기 위해서 수년 동안 국내는 물론 영국 일본 등 여러 공동체를 탐방하면서 찾아가고 초대하기도 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6. 서론이 너무 길어졌는데요. 공동체 마을 사람들과 한 자리에 대화를 나누면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것들이 많을 수 밖에 없는데요. 어느나라 어느 공동체를 가건 삶이란 같은 것이기 때문에 같은 관심사의 질문과 대답이 나누어 집니다. 가장 필수적인 질문은 공동체 생활에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입니까?하는 거고, 그거야 구성원 가족들 간의 관계문제이지요 하는 대답도 한결같은 점입니다.   

7. 부부와 부모자녀 간의 서너 명 가족의 생활도 화목하지 못한 경우가 많은데 믿음이라는 하나만으로 모인 사람들끼리 함께 모여 기도하고 함께 노동하고 함께 식사하고 함께 자녀들을 돌보고.... 자는 시간 외에 눈만 뜨면 함께 지내는데 천사들이 아닌 이상 인간적 갈등이 없을 수 없지요.

생각해 보면 우리는 유아 때부터 따져서 약 18년 이상을 학교 다니며 공부했지요. 교육이란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배우는 것인데 진학과 자격증을 얻는데 필요한 공부만 했지 살아가는데 가장 필수적인 것들, 정작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많이 중요하게 써먹고 절대적으로 필요한 지식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고 배우지 못했습니다.   

8. 평생 결혼해서 직업을 가지고 가정을 이루고 대화를 하면서 살아가게 되어 있지만 함께 사는 이유와 방법에 대해서,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대화를 나누는 기술에 대해서, 평생 돈 버는 일에 목을 매고 살아가지만 직업이란 무엇이고 노동이란 무엇인가? 돈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 함께 사는 기술에 대해서 시헙을 본적도 없고, 공감과 연민과 배려, 예의염치, 분노와 갈등의 환경에 대한 조화로운 삶의 기술, 이런 것은 배운 적이 없단 말입니다.   

8-2 한 마디로 모든 인간은 공동체 관계를 이루며 살다가 공동체 관계 속에서 죽어가는 일생인데 학교에서 공동체로 사는 기술에 대한 과목은 단 한 과목도 없었다는 겁니다. 결혼도 가정도 직장도 남들도 다 그렇게 사니까 살게 되어있는 줄 알고 그냥 제 생각하는 대로 살게 되니까 갈등의 삶을 피할 수 없고 사회적 갈등도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어서 오늘 날 의사 집단들의 이기주의적인 진료파업도 보고 있는 것입니다.   

9. 예수님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셨을까요? 마태오 복음은 사람은 무엇을 중요시 하며 살아야 하느님의 뜻에 맞는가? 서로 평화롭고 조화로운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 가르침이 산상설교와 공동체 설교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로 시작하는 산상설교는 예수님의 인생관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5~7장에 있고, “형제가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할까요?” “일곱 번 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며 잃은 양 한 마리의 비유로 시작하는 가르침을 공동체 설교라고 하는데 18장에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의 모든 크리스챤 공동체는 산상설교와 공동체 설교를 공동생활의 헌장으로 삼고 있습니다.

조화로운 삶, 함께 사는 기술, 공동체로 사는 덕목에 대한 가르침만 열심히 실천해도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에서의 관계는 화평을 찾을 것입니다.   

10. 가정이나 직장이나 단체나 친구관계나 어딜가나 트러블 메이커가 있습니다. 나 자신도 어느새 늘 그 갈등 가운데 있게 됩니다. 갈등적 문제에서 원인은 무엇이고 누구의 잘못이고 어느 쪽이 더 문제인가? 그리고 그 치유의 방법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공동체가 갈등을 치유하는 몇 가지 방법들이 있음을 소개하려 합니다.   

11. 첫째. 직접 만나 사랑으로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공동체 형제가 잘못을 저지르면, 단 둘이 만나 이야기 하라.”고 했습니다. 마음으로 미워하고 비난하고 뒷담화 하지 말고 본인과 솔직하게 대화하라는 말씀인데, 따져서 이기려 들지 말고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 하며 협력을 구하라는 것이지요. 공동체 마을에서는 이것을 사랑으로 직접 말하기라고 합니다. 당신이 잘못했다고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또 우리가 함께 사는 이유가 싸우지 않고 살자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하기 위해 사는 것임을 믿는 믿음으로 대화하는 것이 사랑으로 직접 말하기입니다.   

11-2 우리는 신앙인이기 때문에 말하기 전에 자신을 성찰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내가 말하기 전에 성령께서 그를 성화시켜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령께 성화를 의탁하면 성령께서는 내 자신도 정화시켜주십니다. 이에 대해 공동체의 대부이신 톨스토이께서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서로 싸움에는 어느 한 편의 잘못만 있을 수는 없다. 나에게 10%의 잘못 밖에 없을지라도 먼저 그 10%를 내려놓으면 문제의 절반은 해결된다.”   

12. 둘째는 내 생각이 반드시 옳다는 믿음을 버려야 합니다. 내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다. 너의 생각과 방식이 옳을 수도 있다.” 이렇게 여여로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연민의 시간을 가진다면 내 마음을 아시는 주님의 성령께서 내 대신 그의 문제를 풀어주실 것입니다.   

13. 셋째는 내가 꼭 고쳐놓겠다는 믿음을 버려야 합니다.

이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부부간이건 직장 동료의 태도이건 간에 잘 못된 것을 보는 것은 내 자신이고 내가 충고도 할 수 있지만 그것을 고치는 것은 내가 아니라 그의 마음과 의지 입니다.

알콜 중독자에게 술을 끊어라 충고나 경고를 하고 술병을 치울 수 있지만 술을 마시지 않은 결정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는 것입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게임만 하는 자녀에 대해 부모도 할 수 일이 있던가요? 미워하고 야단치는 것 말고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가 고치지 않는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말입니다.   

13. 넷째는 내 자신이 경청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내가 어떤 충고를 해도 듣지 않고 고쳐지지 않는 것은 그가 경청하지 않기 때문인데, 정작 나는 그의 마음의 외침을 듣고 있는가? 또 이 순간 누군가가 나의 태도에 대해서 계속 충고를 하고 있는데 나는 그 소리를 듣고 있는가? 그래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충고하는 방법을 하느님의 지혜로 먼저 얻어야 합니다. 물을 얻고자 우물을 팔 때에는 하느님의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가르켜 주시는 곳을 보지 못하고 나의 지식과 방식으로만 땅을 파면 헛수고가 되겠지요.

지금도 누군가가 나의 태도와 문제를 걱정하며 원망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느님께서는 오히려 나에 대해서 걱정하고 계실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 두십시오

14. 다섯째는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가족과 친구, 공동체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솔직하게 이야기를 꺼내놓고 나눌 수 있는 자리도 필요하고 그를 이해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궁리하는 것이 공동체가 할 일입니다. 공동체에는 그런 능력이 충분하게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이름으로 둘이나 셋이 모인 곳에 내가 함께 하겠다.”하셨습니다. 내가 사랑으로 걱정하는 일이라면 하느님께서도 걱정하고 계십니다. 나는기도로 준비만 하고 아직 말도 꺼내지 않았는데, 문제가 풀릴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그런 방식이기도 합니다. 그런 경우를 느낀 적이 없으십니까? 신앙 안에서 체험될 날이 올 것입니다.   

15.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내가 무엇이건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시고, 주님께서 하실 일은 하느님께서 해결하시도록 물러서십시오. 내가 해결하려고 힘을 쓰면 하느님께서 기다리시게 되고, 내가 물러서면 하느님께서 직접 해결하시게 된다는 믿음을 가지도록 합시다. 이것이 공동체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입니다.   

16. 코로나로 인해서 정말 두렵고 혼란스러운 시대입니다. 기득권 이기주의로 무섭게 단결하는 악의 집단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가정에 든든하신 하느님의 사랑이 함께 하시기를 두손 모아 축원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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